금융지주 회장의 리더십은 극과 극이다.
금융지주는 대개 오너가 없다. 금융지주 회장의 리더십은 온전히 회장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어떤 금융지주 회장은 상처 뿐인 영광만 안고 물러나고 또다른 회장은 제왕적 리더십으로 군림한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까?
◆ 제왕적 리더십의 길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 회장들은 대개 강력한 권한을 휘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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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과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은 ‘왕회장’으로 불렸을 정도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은행 중심의 금융지주사 가운데 정부와 관계에서 자유롭고 특정한 대주주가 없이 외국계 투자자의 지지를 통해 회장이 강력히 리더십을 확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한금융은 국민연금(9.10%)을 최대주주로 두고 있지만 신한은행 설립을 주도했던 재일교포 주주들이 전체 지분의 17~20%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라응찬 전 회장은 1991년 신한은행장을 맡은 뒤 은행장 3연임, 부회장 2년, 신한금융 회장 4연임 등 20년 동안 장기집권했는데 재일교포 주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기에 가능했다.
김승유 전 회장도 15년간 재임하면서 하나금융의 대주주였던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지지를 받았다. 테마섹은 2010년 기준으로 하나금융 지분 9.62%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현재는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라 전 회장과 김 전 회장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인수합병에서 성과를 내며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라 전 회장은 굿모닝증권, 조흥은행, LG카드 등의 인수합병을 통해 신한금융의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
김 전 회장도 충청은행, 보람은행, 서울은행, 대한투자증권, 외환은행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인수합병의 귀재로 불렸다.
그러나 장기집권을 하면서 전횡을 휘둘렀다는 비판도 커졌고 결국 불명예 퇴진하기도 했다.
라 전 회장은 2010년에 벌어진 ‘신한사태’로 재일교포 주주들의 지지를 잃고 결국 낙마했다.
김 전 회장은 하나금융 회장 시절인 2011년 퇴출을 앞뒀던 미래저축은행에 이사회 결의없이 145억 원을 투자하도록 지시해 하나캐피탈에 손해를 끼친 혐의에 여전히 발목이 잡혀 있다.
◆ 상처 뿐인 영광
KB금융과 NH농협금융 회장은 상대적으로 허약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KB금융의 전신인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은 정부에서 지분을 매각해 민영화됐다. 이런 태생 때문에 KB금융은 오랫동안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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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 |
낙하산 논란이 리더십을 허약하게 만들었고 회장과 은행장이 충돌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는데 이른바 KB사태가 대표적이다.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2차관 출신이고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간접적으로 연관된 인사로 꼽혔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KB금융은 2008년 지주회사 출범 이후 임 전 회장 시절까지 줄곧 외부 인사를 회장으로 영입했다”며 “그때마다 정부에서 입맛에 맞는 인사를 앉혔다는 논란이 터졌던 만큼 회장이 내부에서 리더십을 확고하게 세우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농협금융 회장은 농협중앙회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한계가 허약한 리더십을 만들었다. 농협중앙회는 농협법에 따라 농협금융의 경영을 지도감독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은 최근 조선·해운업의 구조조정으로 자본이 말라가는 농협은행을 살리기 위해 농협중앙회에 배당금과 명칭사용료 감면을 요청했다는 말이 금융권 일각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1일 정례조회에서 “농협은행이 부실 대출로 어려워져 명칭사용료를 감면해 달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는 협동조합의 정체성으로 회자될 말이 아니다”고 밝혔다.
농협금융 회장의 리더십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이에 대해 농협금융 관계자는 “김 회장이 농협중앙회 측에 명칭사용료 감면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거버넌스가 약한 금융지주일수록 회장을 외부에서 영입하는 비중이 크고 그 과정에서 외부의 입김이 강하게 와 닿는 문제가 생긴다”며 “내부를 잘 아는 인사를 회장으로 뽑고 자율권을 보장해야 지배구조를 안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삼일회계법인 출신이지만 2002~2004년에 국민은행, 2008~2013년 동안 KB금융에서 일하면서 내부의 신망을 쌓은 덕분에 빠르게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