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바탕으로 이형구 전 총재 이후 26년 만에 연임에 성공하며 과거 단명했던 산업은행 수장의 흑역사를 끊어내고 산업은행에 장기 리더십시대를 열었다.
이런 이 회장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회장 퇴진 이후 새 정부에서 산업은행은 어떻게 달라질까?
28일 금융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 회장이 26일 금융당국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리더십 교체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 회장은 금융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아직 새 정부 내각도 갖춰지지 않았고 금융위원장 윤곽도 드러나지 않은 만큼 산업은행에 새 회장이 선임되기까지는 물리적으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언제 물러날지도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이 회장이 공식적으로 물러나기 위해서도 임명 때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사표 수리가 필요하다.
새 회장이 선임되기 이전에 이 회장의 사표가 수리된다면 산업은행은 경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현 수석부회장의 회장대행체제로 운영된다.
산업은행에 새 회장이 오더라도 바로 대대적 구조 변화를 주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한동안은 미래 신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과 산업 구조조정이라는 현재 역할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은행은 산업의 개발과 육성, 사회기반시설 확충, 지역개발, 금융시장 안정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1954년 설립돼 70년 가까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다만 단기적으로 매각에 어려움을 겪는 사안들을 놓고는 태도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쌍용차가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그동안 원칙을 내세우며 쌍용차 지원에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산업은행에 새 리더십이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쌍용차 문제로 지역경제 등이 지속해서 어려움을 겪는 일은 산뜻한 출발을 원하는 새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산업은행은 쌍용차의 주채권은행이기 때문에 만약 새 정부가 쌍용차 살리기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면 산업은행이 선두에 나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새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정책금융 전체의 재편에 나선다면 기업들의 사후 구조조정 등과 관련한 산업은행의 역할이 변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새 정부 출범 전부터 시대 변화에 따른 산업은행 역할의 재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비대해진 산업은행 조직을 나누고 개별기업에 대한 사후 구조조정보다는 산업 전반을 바라보며 사전적 산업구조조정과 미래 신산업 육성에 더욱 힘을 싣자는 것인데 이는 이 회장이 그동안 강조했던 산업은행의 역할과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이 회장은 임기 내내 산업은행의 역할이 기업 구조조정에서 산업전환과 혁신기업 육성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우선 기존의 기업 구조조정에서는 속도감있는 업무처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KDB인베스트먼트와 같은 구조조정 전문 자회사를 만들어 기업 매각 가능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 회장이 물러나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주요 공약인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이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이 회장은 그동안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권에서 나오는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과 관련해 수차례 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산업과 금융, 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니까 하는 말”이라고 쏘아붙였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과 윤석열 당선인 측에게 이 회장은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약을 추진하는 데 부담으로 여겨졌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산업은행의 리더십이 바뀌면 임직원의 마음가짐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2017년 9월 회장에 취임해 5년 가까이 산업은행을 이끌고 있다.
이 회장은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하며 산업은행에 장기 리더십시대를 열었는데 그동안 익숙했던 리더십이 5년 만에 바뀌는 만큼 임직원의 긴장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은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에 따라 정책자금을 운영하는 국책은행으로 그동안 정권교체에 따라 회장도 계속 바뀌었다.
2003년 노무현정권, 2008년 이명박정권, 2013년 박근혜정권, 2017년 문재인정권이 들어설 때 당시 산업은행을 이끌던 정건용, 김창록, 강만수, 이동걸(동명이인) 회장 등은 모두 임기가 남은 상황에서 사의를 밝히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산업은행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동걸 회장은 금융위원회를 통해서 사의를 표명했다”며 “5월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입장과 소회를 밝힐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친 문재인정부 성향을 가진 경제학자로 평가된다.
김대중정부에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대통령자문위원회 정책기획위원 등으로 활동했고 노무현정부에서는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한국금융연구원장, 한림대학교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동국대학교 경영대학 초빙교수 등을 거쳐 2017년 9월 산업은행 회장에 올랐다. 2020년 9월 연임에 성공해 현재 임기가 1년6개월 가량 남았다.
이 회장은 산업은행을 이끌며 금호타이어, KG동부제철, 두산중공업, HMM, 대우건설 등 대기업부터 STX조선, 한진중공업, 신한중공업, 대선조선, 흥아해운 등 중소중견기업까지 다수의 기업을 정상화하고 새 주인을 찾아줬지만 쌍용차, 대우조선해양, KDB생명 등의 새 주인 찾기에는 실패하면서 책임론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