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에 더욱 굳어질 것인가, 아니면 미봉책으로 갈등만 더욱 깊어질 것인가?
대우인터내셔널 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10년 포스코에 편입됐지만 포스코그룹에 마치 ‘섬’처럼 존재했다.
주요 계열사 가운데 유일하게 회사이름에 ‘포스코’가 들어가지 않았고 임직원 역시 여전히 자신들을 ‘대우맨’으로 여기고 있는 점이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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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준 포스코 회장 |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이번 사태를 통해 대우인터내셔널을 포스코그룹에 화학적으로 결합해 낼 수 있을까?
18일 재계에 따르면 권 회장은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의 동요를 막기 위해 재빨리 대우그룹 출신의 김영상 부사장을 사장으로 선임하는 등 포스코와 대우인터내셔널의 갈등을 봉합하는 데 온힘을 쏟고 있다.
권 회장이 전병일 전 사장을 보좌역에 임명하기로 한 것도 포스코와 대우인터내셔널의 화합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권 회장의 조치가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대우인터내셔널 사태의 뿌리를 캐면 외부출신 인사와 거리를 두고 제 식구만 감싸려는 포스코의 순혈주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그룹 계열사 가운데 실적이 나쁜 곳이 많은데도 대우인터내셔널이 매각대상으로 계속 오르내린 것도 결국 대우인터내셔널이 이방인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순혈주의가 타파되지 않는 한 포스코와 대우인터내셔널의 갈등은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들은 전병일 전 사장의 사퇴로 미얀마가스전 매각이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포스코가 미얀마가스전의 매각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번에 사이가 틀어지면서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을 통째로 매각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 사이에서도 차라리 다른 곳에 팔리는 것이 낫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이유
대우인터내셔널은 2010년 포스코에 편입됐지만 5년이 다 돼가도록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있다.
포스코는 외부출신 인사에 거리를 두는 순혈주의와 상명하달식 기업문화로 유명하다.
대우인터내셔널은 한때 재계 서열 2위였던 대우그룹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 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그룹의 모태기업이며 대우그룹 시절 그룹 내 인재들이 몰렸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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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상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
대우인터내셔널은 포스코에 인수된 뒤에도 대우그룹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 회사이름에 포스코를 넣는 방안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의 반발이 거세 그만뒀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아직까지 대우 로고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또 회식 자리에서도 대우를 외치며 건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인터내셔널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세계경영’을 외치며 해외에 진출할 때 앞장섰던 기업이기도 하다. 국내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해외지사를 설립했고 아프리카에도 진출했다.
권오준 회장도 대우인터내셔널의 기업문화를 고려해 지난해 대우그룹 출신인 전병일 사장을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으로 임명했지만 결국 화학적 결합은 이뤄내지 못했다.
포스코와 대우인터내셔널의 불협화음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감지됐다.
포스코는 2013년 대우인터내셔널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우그룹이 시작된 부산섬유공장을 매각했다.
올해 초 사옥을 인천 송도로 이전하면서 직원들의 불만이 더욱 커졌다. 상사 업무의 특성상 외부 거래처와 접촉이 쉬운 시내가 편한데 먼 곳으로 일방적으로 이전했다는 것이다.
2012년 의류사업을 정리했을 때도 내부반발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그룹의 모태사업이자 5%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올리는 조직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 추락한 대우인터내셔널의 위상
대우인터내셔널은 국내 최대의 종합상사이지만 포스코에 인수된 뒤 여러 차례 매각대상으로 오르내리는 굴욕을 겪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처음 포스코에 인수될 때만해도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포스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이었고 지금도 계열사 가운데 자산규모 기준으로 가장 덩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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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일 전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
포스코는 2010년 롯데그룹과 경쟁 끝에 3조3800억 원이라는 큰 돈을 들여 대우인터내셔널 지분 68%를 인수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의 글로벌 영업능력과 자원개발 능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는 회장 되고 제일 잘한 일”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포스코는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하며 2018년까지 대우인터내셔널의 연간매출을 당시의 2배인 20조 원 규모로 성장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권 회장이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매각설이 터져 나왔다. 당시 정준양 전 회장의 업적 지우기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인수가에 비해 시너지가 크지 않다는 게 더 큰 이유로 꼽혔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지난해부터 미얀마가스전이 상업생산을 시작하면서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지만 이전까지는 영업이익이 오히려 줄고, 영업이익률이 채 1%도 되지 않는 등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로 포스코의 부채비율이 높아진 점도 매각설이 나온 이유 가운데 하나다.
포스코에 합류한 지 4년 만에 매각설이 나오면서 대우인터내셔널 임직원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고 포스코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대우인터내셔널 내부에 팽배해졌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