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가 유럽의 새 전기차 배터리공장 건설기간을 단축한 데 이어 추가 설비 투자도 예상보다 대폭 앞당길 수도 있다.
유럽 완성차 고객사들이 적극적 증설을 요구하는 한편 삼성SDI가 유럽에 진출하는 배터리 경쟁사에 맞서 시장을 최대한 빨리 선점해야 할 필요성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어규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19일 "글로벌 중대형 배터리시장의 성장세가 예상치를 웃도는 수준으로 지속될 것"이라며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 증가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중대형 배터리는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의 전 세계적 보급 확대에 힘입어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배터리를 주력사업으로 하는 삼성SDI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삼성SDI의 중대형 배터리 매출 비중은 지난해 22%에 그쳤으나 올해 32%까지 급증할 것으로 추정됐다.
삼성SDI가 최근 가동을 시작한 유럽 헝가리의 새 대규모 배터리공장이 중대형 배터리 출하량과 매출 비중 증가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SDI는 올해 연말로 예정돼있던 유럽 공장 첫 가동을 4월로 대폭 앞당겼다. 주요 고객사들의 배터리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단기간에 양산체제를 갖춰낸 것이다.
에너지 전문매체 클린테크니카는 삼성SDI가 주요 고객사인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e골프' 신모델 양산 시기에 맞추기 위해 새 배터리공장 가동을 앞당긴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삼성SDI가 기존 투자 계획을 일찌감치 마무리한 만큼 유럽에 생산라인을 추가로 증설하거나 남은 부지에 새 공장을 세워 배터리 출하량을 더 공격적으로 늘릴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유럽 주요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 출시를 확대하기 위해 삼성SDI를 포함한 글로벌 배터리업체에 유럽 내 생산공장 증설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푸조시트로앵(PSA) CEO는 최근 로이터를 통해 "아시아에 배터리 수급망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배터리업체들이 유럽으로 적극 진출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르노 등 다른 자동차기업뿐 아니라 유럽연합도 글로벌 전기차시장 선도를 목표로 두고 있어 배터리업체들의 현지 생산 투자에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기차의 시장 확대에 전기차 배터리의 높은 가격이 걸림돌로 꼽힌다. 최근 배터리업체들이 코발트와 같은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공급가에 반영하고 있어 가격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유럽 완성차기업들이 현지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받으면 물류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배터리업체들의 공장이 증설되면 규모의 경제 효과로 가격이 지금보다 더 낮아질 공산도 크다.
CATL에 이어 BYD 등 중국 대형 배터리업체들이 유럽에 공장 건설 계획을 잇따라 내놓으며 삼성SDI가 최대한 이른 시일에 출하량과 고객사를 늘려 시장을 선점해야 할 필요성도 높아졌다.
▲ 독일 폴크스바겐 전기차 'e골프' 신모델. |
완성차 고객사들은 안전성 등을 이유로 기존 배터리 수급업체를 쉽게 바꾸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삼성SDI는 헝가리의 새 공장 이외에 한국과 중국에 중대형 배터리 공장을 가동하고 있지만 한국이나 중국에서 완성차 고객사를 확보하기 어려워 증설이 진행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의 헝가리 배터리공장에 추가 증설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며 "고객사 수요와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라인 증설을 계속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SDI가 최근 삼성물산 지분을 팔아 얻은 6천억 원 정도를 투자 재원으로 쓰겠다고 밝힌 점도 새 성장동력인 중대형 배터리 공장 증설계획이 구체화될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삼성SDI에 따르면 헝가리 배터리공장에 약 4천억 원이 투자됐다. 증설 투자를 벌일 자금의 여력도 충분한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