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그룹, 현대자동차그룹, 롯데그룹, 한화그룹, 교보생명, 미래에셋금융그룹, DB그룹(옛 동부그룹)은 7월부터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을 적용받게 된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모범규준을 통해 이 그룹들의 금융계열사가 다른 계열사 일감에 너무 의존하거나 부실화된 비금융계열사 지원에 동원됐다가 건전성이 흔들리고 돈을 맡긴 소비자도 피해를 입는 상황을 막는 방안을 추진한다.
모범규준이 시행되면 금융위와 금감원은 감독을 받는 금융그룹 대상으로 이번에 제시된 그룹리스크 유형과 관리 실태를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경영 건전성도 살펴보게 된다.
평가 결과 관리실태나 자본적정성이 기준을 밑도는 금융그룹에 자본 확충이나 내부거래 축소, 비금융계열사와 출자·자금거래 중단 등의 경영 개편계획을 권고할 수 있다.
이 모범규준은 감독대상인 금융그룹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예를 들어 삼성생명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8.23%의 자본적정성 문제를 지적받아 추가 자본금을 크게 확충해야 한다는 권고를 받을 수 있다.
모범규준 초안 10조는 자본적정성의 평가기준으로 ‘비금융계열사의 재무나 경영위험이 금융그룹의 부실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는 비금융계열사에 일정 규모 이상을 출자하면 필요자본을 더하는 방식으로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모범규준 내용을 감안할 때 삼성전자 경영이 악화되면 삼성생명의 건전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금융위와 금감원이 판단해 필요자본 확충을 권고할 수 있다.
모범규준에는 자본적정성 때문에 추가 자본을 얼마나 쌓아야 하는지 규정되지 않았지만 금융위는 초안 브리핑에서 '개별 비금융계열사의 출자분 가운데 은행이나 보험사 자기자본의 15% 초과분' 또는 '전체 비금융계열사의 출자분 가운데 은행이나 보험사 자기자본의 60% 초과분' 가운데 더 큰 금액을 필요자본에 전액 더하는 방식을 예시로 제시했다.
삼성생명은 2017년 기준으로 자기자본 31조1215억 원을 보유했고 15%는 4조7천억 원 규모다. 삼성생명이 현재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가치는 26일 종가 기준으로 전체의 88.9%(27조6863억 원)로 집계됐다.
금융위의 예시 방식을 단순 적용하고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가정하면 자기자본의 15%를 초과하는 22조9800억 원가량을 필요자본으로 더 쌓아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대캐피탈도 2017년 9월 기준으로 전체 자동차금융 물량의 90% 가까이를 계열사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대상 할부금융에서 거두고 있어 권고대상에 오를 수 있다.
모범규준 초안 11조는 금융그룹의 내부거래, 12조는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의 동반 부실위험을 금융그룹에서 적절하게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감독대상인 금융그룹들은 4월 초에 모범규준 초안이 공개된 뒤에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계열사 지분이나 내부거래 물량 등과 관련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은 미래에셋대우 내부에 그룹위험관리팀을 꾸려 금융그룹 통합감독 관련 업무를 맡겼지만 다른 금융그룹 상당수는 관련 조직도 아직 만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유광열 금융감독원장 대행.
모범규준 최종안이 아직 나오지 않았고 관련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쓰이는 점이 금융그룹들의 소극적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모범규준은 업계가 자율적으로 따르는 권고안으로 법적 효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금융위는 9월에 금융그룹 통합감독과 관련된 법안을 상정하고 연내 통과를 목표로 제시했지만 국회의 여야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의결 여부는 불확실하다.
이를 놓고 유광열 금감원 수석부원장(금감원장 대행)은 25일 금융그룹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과 관련해 그룹 차원의 관심이 다소 부족하고 대표회사와 계열사 사이에 인식 차이도 컸다”며 “조직이나 인력도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지적했다.
유 수석부원장은 “금융그룹들이 그룹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조기에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직접 당부했다. 하반기에 금융그룹을 현장점검해 모범규준을 얼마나 이행했는지 살펴보고 그룹 위험의 실태도 평가하기로 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20일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의 처리는 법안이 통과되면 강제로 하게 된다”며 “삼성생명이 그전에 방안을 스스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