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미세공정화를 앞당길 수 있는 EUV(극자외선) 신공정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에서 경쟁사인 대만 TSMC를 뛰어넘을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새 공정기술이 발전할 경우 메모리반도체에도 폭넓게 적용될 수 있어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격차를 경쟁사들과 벌리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23일 “삼성전자가 EUV장비를 대량으로 사들여 미세공정기술을 선점하려 하고 있다”며 “TSMC와 위탁생산 경쟁에서 큰 도약의 발판을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EUV는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빛으로 원판에 회로를 그리는 노광작업에 사용되는 신기술이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기업이 맞이한 미세공정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EUV 도입은 기존 공정보다 더 날카로운 펜으로 정교한 회로를 그리는 과정과 비슷하다”며 “공정단계도 줄일 수 있어 생산성을 높이는 데도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내년 도입하는 7나노 공정부터 EUV를 활용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미 시범생산 단계도 거친 만큼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상용화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EUV장비의 높은 가격과 물량부족, 신공정 도입에 따른 수율저하 가능성 등이 적용확대에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EUV장비는 1대에 2천억 원 정도의 고가인 데다 공급업체도 많지 않다.
반도체기업들이 대량양산을 위해 EUV장비 10대 정도를 들일 경우 2조 원 이상의 투자비와 고난도 공정기술 등이 필요한 만큼 삼성전자와 같이 투자여력이 충분한 기업 외에는 사실상 쉽지 않다.
또 EUV 신공정의 안정화에 차질을 겪을 경우 오히려 실적에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 삼성전자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 내년부터 EUV를 적용하지 않은 8나노 공정도 동시에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이런 걸림돌을 넘고 EUV를 활용한 반도체 양산에 가장 먼저 뛰어든다면 아직 점유율이 미미한 위탁생산시장에서 단숨에 절대강자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50% 안팎인 대만 TSMC와 UMC, 미국 글로벌파운드리 등 위탁생산 상위기업들이 모두 EUV의 전면적인 도입에 삼성전자보다 뒤처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전자전문매체 EE타임스에 따르면 TSMC는 삼성전자와 달리 EUV 공정을 7나노 이후 공정부터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보다 1년 가까이 늦어지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이에 그치지 않고 반도체 장비기업과 오랜 협력관계, 막대한 자금력 등을 활용해 EUV장비 물량을 당분간 독점하며 경쟁사의 진입을 더 늦추려 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EUV장비 대량구입으로 경쟁사 진입을 차단하면 위탁생산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 될 것”이라며 “기술력과 시설투자 여력이 모두 큰 장점이 되고 있다”고 바라봤다.
삼성전자는 최근 시스템반도체사업부를 분리한 뒤 본격적으로 육성에 나서겠다고 밝히며 대규모 시설투자확대도 예고했다. 본격적인 성장을 위한 물밑작업을 모두 마무리해가고 있는 셈이다.
▲ 반도체장비 전문기업 ASML의 반도체 노광공정 장비. |
김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EUV 도입효과로 퀄컴 이외에 반도체 위탁생산 주요고객사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지가 미래 성장에 가장 관건이 될 것으로 파악했다.
애플과 구글, 엔비디아 등 인공지능과 자율주행반도체를 개발하는 IT기업들이 치열한 기술경쟁에서 우위를 잡기 위해 기술력이 앞선 삼성전자와 협력을 적극 추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UV공정은 시스템반도체뿐 아니라 D램과 낸드플래시 등 삼성전자의 주력사업인 메모리반도체에도 적용할 수 있다.
아직 메모리반도체의 기술격차는 시스템반도체보다 덜 주목받고 있지만 인공지능서버와 자율주행차 등에서 고성능 메모리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에 이어 메모리반도체에서도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 기존 경쟁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격차를 확보하며 반도체시장 절대강자로 위상을 더 높일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EUV 공정은 메모리반도체 분야까지 적용가능성이 매우 넓다”며 “EUV장비의 가격과 생산비용, 수율문제 등이 해결되면 전면적으로 도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