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연 기자 nuevacarta@businesspost.co.kr2017-10-11 15: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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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이 태도를 바꿔 금융권의 산별교섭 재개를 위한 협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산별교섭 동참에 긍정적인 뜻을 보였고 하 회장이 임기를 1개월가량 남겨놓은 상태에서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된 상황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왼쪽)과 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 회장은 조건없는 산별교섭 복원에 부정적인 입장을 지켜왔지만 최근 새 협상창구인 노사 대표단 회의를 여는 데 합의하는 등 이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신한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우리은행 행장들이 산별교섭 복원에 미온적이었던 태도를 바꿔 관련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요청한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장들은 추석연휴 전 하 회장과 만나 산별교섭 복원에 찬성하는 의견을 전달하고 관련된 결정권한도 위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성호 신한은행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은 하 회장을 만나기 전에 금융노조와 개별적으로 면담하면서 산별교섭의 필요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하 회장도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관계자들과 9월 말에 만났을 때 “산별교섭 복원에 개인적으로 찬성한다”며 “회사 측과 최선을 다해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된 점도 산별교섭 논의의 재개에 나서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하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5월 대선후보로 출마했을 때 산별교섭 제도화를 공약했다.
하 회장이 11월 말에 임기가 끝나는 점을 감안하면 산별교섭 복원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려 한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하 회장은 2016년에 적극 추진했던 성과연봉제 도입이 사실상 폐기돼 체면을 구긴 전례가 있다”며 “임기 막바지에 논란을 키우기보다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에 맞춰 산별교섭 복원에 힘을 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하 회장은 산별교섭을 하면서 관련 제도개편을 논의하고 임금체계를 바꾸기 위한 태스크포스팀도 꾸리는 조건을 제시했는데 이점이 노사 대표단 회의에서 변수가 될 수 있다. 금융노조는 하 회장의 제안을 성과연봉제 도입의 연장선상으로 평가해 반발하고 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하 회장이 산별교섭 제도와 임금체계 개편을 선제조건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함께 논의하자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라며 “이번 노사 대표단 회의에서 산별교섭 제도와 임금체계 개편에 관련된 문제도 논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하 회장이 제안한 조건을 노사 대표단 회의에서 논의할지 아직 알 수 없다”며 “조만간 첫 회의를 열어 앞으로의 일정과 관련 사안들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 회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연례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데 17일에 귀국하는 대로 노사 대표단 회의를 열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자협의회와 금융노조는 2011년부터 산별교섭을 통해 임금과 노동조건 등을 결정한 뒤 같은 업종의 모든 회사에 적용해 왔다. 그러나 2016년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협의회 회원사 33곳 가운데 32곳이 탈퇴해 산별교섭이 중단됐다.
금융노조는 문재인 정부의 출범 이후 산별교섭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국책은행을 비롯한 16곳도 사용자협의회에 복귀했지만 시중은행 등 17곳은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하 회장과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사용자협의회에 복귀하지 않은 회사 측과 금융노조 관계자가 대표단 회의에 참석한다”며 “기존에 하 회장과 허 위원장만 만났던 것과 비교해 더욱 폭넓은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