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사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외부업체와 계속 협력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며 앞으로 독자생존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반도체사업에 의지를 보이는 상황에서 낸드플래시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입지를 확보하려면 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려야 하는 만큼 삼성전자를 뒤따라 강력한 물량공세로 전략을 선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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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 |
재팬타임스는 30일 “도시바가 웨스턴디지털에 반도체사업을 매각하기로 최종결정하고 법적분쟁 등을 멈추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도시바는 이전과 달리 웨스턴디지털과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인수계약을 맺고 매각계획을 확정한 뒤 일본 정부펀드와 미국 사모펀드 등 공동인수자의 투자규모를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 인수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SK하이닉스 컨소시엄의 참여기회가 무산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셈이다.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경쟁력 확보를 노려 지난해부터 미국 하드디스크업체 씨게이트와 협력을 추진해왔지만 의견조율에 실패했다. 이번에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계획마저 무산될 경우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씨게이트와 도시바 등 하드디스크업체와 협력할 경우 기존 서버고객사를 통해 낸드플래시 저장장치 공급을 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했지만 이제는 독자적으로 역량을 확보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은 이번 인수성과로 기술협력을 더욱 강화하며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인텔과 마이크론 역시 연합군을 맺어 낸드플래시사업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압도적인 기술력과 물량공세로 독주체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낸드플래시에서 비교적 후발주자인 SK하이닉스는 이런 경쟁업체들에 대응해 내놓을 뚜렷한 무기가 없다.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를 새 성장동력으로 꾸준히 강조하고 있지만 생산능력이나 향후 계획된 시설투자규모가 경쟁사와 비교해 뒤처지는 것도 약점으로 꼽힌다.
이민희 흥국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올해 낸드플래시 설비투자는 지난해보다 60% 가까이 증가했지만 여전히 규모가 작은 수준”이라며 “공급증가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바라봤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반도체 인수 실패를 계기로 전략을 선회하며 낸드플래시 시설투자를 단기간에 크게 늘리는 적극적인 물량공세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인수에 들이려던 5조 원 정도의 여유자금을 자체 시설투자에 활용할 수 있고 웨스턴디지털과 도시바의 인수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지금이 시설투자에 적기로 꼽히기 때문이다.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 반도체 인수작업을 마무리하려면 적어도 반년 넘는 시간이 걸린다. 이 기간에 신규투자계획을 잡기 쉽지 않고 인수자금 부담으로 시설투자 여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김영우 SK증권 연구원은 “도시바는 현재 낸드플래시 2위 업체지만 내년까지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SK하이닉스가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인프라 투자는 필수적”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하반기부터 세계 최대규모의 평택 3D낸드 공장가동을 시작한 데 이어 최근 중국에 약 8조 원 규모의 낸드플래시 설비투자도 결정했다. 물량공세에 나서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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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
경쟁사들이 주춤한 사이 생산시설을 대폭 확대할 경우 생산라인을 조기에 안정화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고객사를 미리 선점해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도 낸드플래시에서 독자생존으로 방향을 선회하면 삼성전자와 같은 전략으로 뒤를 따를 수밖에 없는 만큼 시설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SK하이닉스의 시설투자계획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강력한 인수의지를 밝히며 추진한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 쓴잔을 마신데다 SK그룹에서 급격히 위상이 높아진 반도체사업의 성장성 증명도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올해 초 7조 원에 이르는 SK하이닉스의 시설투자계획을 직접 발표하며 적극적 지원을 약속했다. 그뒤 올해 투자금액을 9조 원대로 더욱 늘리기로 한 만큼 내년에는 10조 원 이상의 증설투자계획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도시바 반도체 인수 가능성이 낮아질수록 자체 시설투자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은 높아진다”며 “3D낸드 중심의 지속적인 신규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