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문재인 정부에서 통화정책과 관련해 운신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존 정부들이 출범 초기부터 경기부양을 위해 한국은행에 금리인하 압박을 넣었던 것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
|
|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이 총재와 문재인 정부의 거시경제정책관이 비슷한 만큼 원활한 정책공조가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25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한국은행은 5월 기준금리를 지난해 6월 이후 11개월 연속 연 1.25%로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경기 회복세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금리를 낮출 필요성이 줄어든 데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과 속도를 확인할 필요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일자리 창출과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이 총재는 통화정책과 관련해 운신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점쳐진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10일 “이번 정부의 가장 차별적 정책으로 재정정책의 역할 강화 및 정부의 개입 강화를 꼽을 만큼 문재인 정부는 재정의 역할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인하 압박에서 자유로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 총재는 2014년 취임한 뒤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25%까지 낮추는 등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시장 활성화정책에 순순히 따르며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반면 문 대통령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 의지를 보이는 반면 통화정책과 관련해서 별다른 공약이나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한국은행의 역할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우선 통화정책은 정부가 아닌 한국은행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내정자도 재정정책에 초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김 내정자는 21일 내정된 뒤 기자들과 만나 “보수적, 진보적 경제학자 모두 통화정책을 중요시했던 고전적 관점을 수정해야 한다는데 동의했다”며 “통화와 재정이 보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데 저금리, 저물가 상황에서는 특히 재정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및 최경환 전 부총리 등이 경제정책의 혼합을 강조하면서도 재정확대보다는 완화적인 통화정책에 무게를 더 실었던 것과 비교된다.
이 총재 역시 지난해부터 가계부채 문제와 경기부양방안 등을 놓고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 확대를 통한 해결책이 적합하다는 입장을 강조해온 만큼 새 정부와 정책공조도 원활할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김 내정자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청와대 경제비서관과 한국은행 부총재보로 같이 손발을 맞춘 경험이 있다”며 “경제정책의 수립과 운용에 경륜이 풍부하고 훌륭하신 분”이라고 평가했다.이 총재가 소비회복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던 점도 문재인 정부와의 호흡을 기대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
|
|
▲ 문재인 대통령. |
문재인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해 적극적 대응을 펼칠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이 총재가 정부와 정책공조를 위해 이번 금통위에서 금리인상 가능성을 내비칠 여지도 있다.
새 정부가 가계부채총량관리제를 도입하고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대응책 등을 마련하면 한국은행이 금리를 높여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가계부채 문제해결을 위해 공조할 가능성을 열어놓는 셈이다.
금리인상 신호를 시장참여자들에게 선제적으로 보내 새 정부 정책에 따른 경기회복 기대감을 높이고 가계부채를 잡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슬비 삼성증권 연구원은 “5월 금통위는 내수경기 흐름을 더 지켜보고 가계부채문제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통화정책 등을 근거로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며 “다만 경제지표의 개선과 대내외 불확실성 완화, 새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 기대감 등을 언급하며 다소 매파적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