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에 매출을 크게 의존하던 영국 반도체기업이 거센 역풍을 맞으며 전 세계의 다른 부품업체들도 비슷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이 애플 아이폰의 주요부품을 공급해 수혜를 기대하고 있지만 이런 효과가 사라질 경우 투자확대가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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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 쿡 애플 CEO. |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4일 “애플에 매출을 위험할 정도로 의존하던 기업들에 경고등이 켜졌다”며 “사업구조를 놓고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애플은 이르면 내년 출시되는 신제품부터 자체개발한 그래픽기술을 적용하겠다며 그동안 사용하던 영국 이매지네이션테크놀로지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매지네이션은 애플에 그래픽반도체 설계기술을 제공하고 라이선스비를 받으며 전체매출의 절반 이상을 올린다. 애플의 발표 뒤 이매지네이션 주가는 하루만에 72% 하락했다.
애플은 이매지네이션 지분 8.1%를 보유한 4대 주주로 한때 인수를 검토한 적도 있다. 이처럼 과거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지만 주가하락으로 입을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협력중단을 선언했다.
증권사 인베스텍은 “애플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효과마저 사라질 경우 이매지네이션은 애플뿐 아니라 다른 고객사도 대거 놓쳐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애플이 라이선스비를 더 유리한 쪽으로 협상하거나 그동안 이매지네이션과 협력을 통해 얻은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사용하는 ‘꼼수’를 쓰려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매지네이션은 “애플은 우리의 특허권과 지적재산권 등 핵심적인 정보를 침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해 사용할 것이라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반발했다.
이번 사건은 글로벌 전자업계에서 애플이 확보한 막강한 영향력과 시장지배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매지네이션과 유사한 처지에 놓인 글로벌 부품업체들은 수십 곳도 넘는다.
올해 아이폰 신제품의 부품공급 수혜를 노려 생산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삼성디스플레이에 아이폰용 올레드패널 7천 만 대 분량을 선주문했다. 신제품 흥행에 자신을 보이며 시장의 예상보다 주문량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유비산업리서치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올해 올레드 생산증설에 지난해보다 투자를 늘릴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투자금액은 9조8천억 원으로 기존 연평균 4~5조 원에서 크게 늘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경쟁업체들과 기술격차로 내년까지도 아이폰용 올레드패널을 독점공급할 가능성이 유력해지며 공급물량이 늘어날 가능성에 선제대응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LG이노텍 역시 지난해부터 아이폰용 듀얼카메라모듈의 독점공급사로 자리잡았다. 올해 듀얼카메라 적용제품의 확대가 예상되며 애플 부품공급 수혜에 높은 기대를 걸고 있다.
LG이노텍은 듀얼카메라를 탑재한 아이폰이 흥행하자 지난해 하반기 베트남에 2600억 원 정도를, 최근 구미에 2644억 원을 투자해 카메라모듈 신규공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잇따라 내놓았다.
LG이노텍에서 30% 이상을 차지하는 애플의 매출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애플에 올레드패널 공급을 시작할 경우 상당한 부분을 의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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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겸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왼쪽)와 박종석 LG이노텍 사장. |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부품수급처를 다변화하거나 자체적인 부품수급능력을 확보할 경우 이매지네이션과 같이 단기간에 급격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은 최근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에 뛰어들었고 대만 홍하이그룹과 디스플레이 합작법인 설립도 논의하고 있다. 카메라모듈 관련업체의 인수합병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은 이매지네이션과 달리 물리적인 부품을 생산하고 있어 단기간에 공급이 끊길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공급비중이 줄어들고 애플과 단가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경우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애플이 스마트폰시장의 유행을 강력하게 선도하는 만큼 올레드패널과 듀얼카메라 등 신기술이 애플 신제품에 계속 적용되지 않을 경우 중화권 스마트폰업체들에 공급도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블룸버그는 “애플은 과거부터 삼성전자 등 여러 부품공급사들과 마찰을 빚어왔다”며 “가장 돈이 되는 고객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막강한 영향력으로 회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교훈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