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임시국회에서 대기업의 지배구조개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의 통과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삼성그룹과 SK그룹 등이 한숨을 돌리게 됐다.
이 그룹들은 조기대선정국을 거치는 과정에서 법개정의 불씨가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그 전에 지배구조개편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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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
28일 국회에 따르면 3월2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기업이 인적분할할 때 자사주 활용을 제한하는 법안들의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해져 이 법안들은 대선이 치러진 뒤에야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7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었는데 여야가 전자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제 관련 법안을 두고 이견을 보이며 회의가 파행했다. 자사주 활용을 제한하는 법안들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3월2일에 2월 임시국회의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사주 활용을 제한하는 법안들이 이번 회기에 처리되기 어렵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조기대선정국으로 들어서면 각 정당은 당내 경선과 대선레이스에 집중할 것”이라며 “경제민주화법안의 통과를 추진할 동력이 약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과 SK그룹 등이 지배구조개편을 추진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그룹들은 주요 계열사의 인적분할을 뼈대로 하는 지배구조개편을 실시할 것으로 점쳐지는데 자사주 활용이 제한될 경우 작업에 난항을 겪을 수 있었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하는 과정을 거쳐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는 시나리오가 유력시되고 있다.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할 때 자사주에 신주 배정이 금지되면 지주회사가 요건(자회사 지분율 20% 이상)을 갖추는 데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
SK그룹은 SK텔레콤을 인적분할해 지주회사 SK와 합병하는 시나리오 등이 나온다. 자사주 활용이 제한돼도 이런 시나리오에 끼칠 영향은 거의 없지만 구조개편 과정에서 최태원 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높이는 효과를 얻기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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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 |
이 그룹들이 지배구조개편을 서두를 가능성도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대선정국을 거치면서 관련 법안의 논의가 다시 불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 야권의 주요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재벌개혁‘을 강조하며 관련 공약을 내놓고 있다.
윤 연구원은 “지배구조개편에 이사회 의결을 시작으로 거쳐야 할 단계가 많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법안이 폐기된 것이 아니라 계류된 상태기 때문에 기업들이 빠르게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미 지배구조개편에 착수한 곳도 있다. 현대중공업은 인적분할을 뼈대로 하는 지배구조개편을 추진하고 있는데 27일 임시주총에서 분할계획이 통과됐다.
윤 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이 선례를 만들면서 다른 기업들이 지배구조개편을 진행하는 데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며 “SK그룹 등은 개편을 위해 대대적인 사전작업이 필요하지는 않고 중요 의사결정만 남아 있기 때문에 올해 안에 개편을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삼성그룹은 당장 ‘눈앞에 불’을 끈 뒤 지배구조개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이 특검수사를 받고 구속된 상황인데다 미래전략실 해체 등을 포함하는 그룹 쇄신안을 실행하는 데 역량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헌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