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오락가락' 행보 때문에 미국 고등훈련기 교체사업(APT)을 수주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미국 주요 방산기업에 전투기 납품가격을 낮출 것을 압박했는데 이런 기조가 이어질 경우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사업을 수주하는 데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 트럼프, 방산기업 압박해 납품가격 낮추는데 성공
22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방산기업인 록히드마틴과 보잉 등에 최근 여러 제품의 가격문제를 거론하면서 내년 입찰이 예정돼 있는 미국 고등훈련기 교체사업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
|
|
▲ 하성용 한국항공우주산업 사장. |
트럼프 당선인은 21일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메릴린 휴슨 록히드마틴 CEO와 데니스 뮐렌버그 보잉 CEO를 만났다.
휴슨 CEO는 면담 후 성명을 통해 “(트럼프와 함께) 전투기의 비용을 낮추기 위한 생산적인 회의를 열었다”고 말했다. 뮐렌버그 CEO도 기자들과 만나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의 신규제작 비용을 40억 달러 이하로 낮추겠다”고 말했다.
두 방산기업 CEO가 모두 비행기의 납품단가를 줄이겠다는 점을 사실상 약속한 것이다.
록히드마틴과 보잉은 각각 미국 공군에 대통령 전용기와 차세대 전투기를 납품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최근 연달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트위터에 두 회사가 생산하는 기체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면담이 이뤄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12일 트위터를 통해 “F-35 도입계획과 비용은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록히드마틴은 F-35 전투기를 개발해 미국 공군에 납품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예산은 2001년 당시 2330억 달러에서 현재 1조4천억 달러까지 6배 넘게 증가했다. 해외언론들은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록히드마틴이 개발비를 낮출 것을 압박한 것으로 분석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앞서 6일에도 “보잉이 에어포스원을 새로 만들고 있는데 비용이 40억 달러 이상이라 통제불능”이라며 “주문을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 한국항공우주산업, 가격인하 압박에 영향 받을까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방산기업들을 길들이는 데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향후 입찰이 예정된 미국 고등훈련기 교체사업(APT)도 앞날을 섣불리 점치기 어렵게 됐다.
APT사업은 미국공군이 운용하고 있는 노후화된 T-38C 훈련기를 교체하는 사업으로 사업규모가 최대 3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방산업계는 애초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국항공우주산업이 미국 고등훈련기 교체사업을 수주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록히드마틴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APT사업 수주를 노리고 있다. 유력한 경쟁사로는 보잉-사브 컨소시엄과 노스롭그루먼-BAE 컨소시엄 등이다.
록히드마틴은 미국 대선기간에 트럼프 후보 캠프에 거액의 후원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록히드마틴은 최근 15년 동안 트럼프가 소속된 공화당에 미국 기업 가운데 10번째로 많은 정치후원금을 대기도 했다. 록히드마틴과 공화당의 오랜 유대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관계를 고려할 때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APT사업이 한국항공우주산업-록히드마틴 컨소시엄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방산업계 안팎에서 나왔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 뒤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여러 사업에서 비용절감을 최우선 요소로 내세우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수주에 암초를 만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트위터에 “(대통령에 취임한 뒤) 군사부문에서 수십억 달러를 절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최종 비행기 조립을 미국 현지에서 완성해야 하는데 다른 경쟁사들보다 자재 운송비 등에서 불리한 형편이다. 경쟁사보다 최대한 낮은 가격으로 좋은 성능의 훈련기를 만들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이미 T-50A의 시험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쳐 경쟁사들보다 앞서 있다고 평가됐으나 최근 트럼프의 행보가 최저가 입찰에 집중될 것으로 보이면서 앞날을 내다보기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