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민간발전사업자 드렉스사가 보유한 바이오매스 발전소 연료 저장설비. <드랙스> |
[비즈니스포스트] 재생에너지 발전의 일종으로 인정받고 있는 바이오매스 발전을 퇴출해야 한다는 국제적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바이오매스 발전은 이론상 온실가스 배출량이 없다는 이유로 세계 각국 정부로부터 재생에너지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바이오매스 발전소가 화석연료인 석탄발전소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높아 실질적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12일 환경단체 발표와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국제적으로 바이오매스 발전 퇴출을 향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디언과 오일프라이스탓컴 등 외신들은 10일(현지시각) 국제 싱크탱크 '엠버'가 내놓은 보고서를 인용해 2023년 기준 영국 민간발전사업자 드랙스가 운영하는 바이오매스 발전소가 영국에 마지막으로 남은 석탄발전소보다 4배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다고 보도했다.
바이오매스 발전은 식물성 원료 등 유기물질을 연소해 에너지를 얻는 발전 방식이다. 주로 우드펠릿(나무를 작은 입자로 분쇄하고 건조 후 압축해 만든 알갱이) 등을 태워 열 발전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식물 안에 갇혀 있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배출된다.
바이오매스 발전 사업자들은 바이오매스 발전을 통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모두 식물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만큼 식물을 다시 키워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있어 실질 배출량은 0에 수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한국, 일본 등 세계 각국 정부는 이런 논리를 인정해 바이오매스 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보고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프랭키 마요 엠버 애널리스트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우드펠릿을 태우는 건 석탄을 태우는 것만큼이나 환경에 좋지 않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바이오매스 발전에 보조금을 계속 지급하는 것은 매우 비싼 실수"라고 강조했다.
드랙스는 2012년부터 영국 요크셔주에서 운영하는 발전소를 석탄에서 바이오매스 발전으로 전환했다. 현재 영국 전체 발전량의 약 5%를 담당하는 설비로 영국 정부로부터 재생에너지 발전 실적을 인정받아 2012년부터 현재까지 약 70억 파운드(약 12조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수령했다.
CNN 보도에 따르면 드랙스 바이오매스 발전소에 탄소포집 장비를 도입하기 위한 작업에 영국 정부가 20억 파운드(약 3조 원)를 지원하기도 했다. 드랙스 측은 바이오매스 발전의 온실가스 순배출량은 0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탄소포집을 시행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도리어 줄어드는 탄소 네거티브를 달성할 수 있는 논리를 내세웠다.
드렉스 대변인은 가디언을 통해 "엠버의 이번 보고서는 결점이 있는 부분이 많다"며 "이미 국제적으로 광범위하게 인정된 바이오매스 발전의 탄소 회계 방식을 무시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바이오매스 발전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과 달리 드랙스가 운영하는 바이오매스 발전소는 원료 조달 단계에서부터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5월 BBC는 드렉스가 바이오매스 원료를 캐나다에 위치한 원시림에서 조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원시림에 서식하는 나무는 수령이 오래돼 벌목 단계에서부터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잠재량이 많을 뿐 아니라 수림 복원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 정부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원시림에서 벌목한 나무를 바이오매스 발전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드렉스는 이 의혹을 부인했으나 BBC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제공받은 수출입 장부에 따르면 드렉스는 명백히 원시림 일대에서 목재를 다량 조달한 것이 확실하다고 재차 반박했다.
유럽연합에서도 BBC 보도와 비슷한 이유를 들어 바이오매스 발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 5월 유럽환경교통연합(T&E)은 유럽연합 탄소배출권 거래제도(EU-ETS)가 바이오매스 발전을 더 이상 순 배출량 0으로 평가해선 안 된다는 분석을 내놨다.
▲ 불을 얻기 위해 우드펠릿을 태우는 모습. < Flickr > |
바이오매스 발전 사업자가 지속가능 원칙에 따른 목재만을 발전에 사용했다 가정해도 토지 전용과 목재 유통 과정 등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T&E 자체 분석에 따르면 이렇게 집계되지 않은 채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EU-ETS 제도 아래 관리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2024년 기준 EU-ETS가 관장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유럽연합 전체 배출량의 약 45%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카를로스 칼보 암벨 T&E 에너지정책 애널리스트는 "바이오매스 발전 배출량을 배출권거래제도를 통해 배출량 0으로 인정해주는 것은 이들에게 백지수표를 발행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지속가능 표준과 전 과정에 걸친 탄소 회계 방식이 부재한 현 상황에선 바이오매스 발전은 더 많은 탄소 배출량을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바이오매스 발전을 재생에너지 인증제도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은 올해 4월 세계 시민단체 69곳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앞으로 바이오매스 발전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는 제도를 멈춰달라는 서한을 제출했다.
산업부는 현재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제도 아래 바이오매스 발전에 태양광이나 육상 풍력 등 재생에너지보다도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 지난해 5월에는 국내 태양광 협동조합이 서울고등법원에 REC 가중치 취소 항소를 제기했으나 지난달 26일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서울고법은 태양광 협동조합이 소를 제기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이에 기후솔루션은 입장문을 통해 "정부 정책으로 지금까지 4조 원이 넘는 REC를 바이오매스 발전에 쏟아부어 5천만 톤의 나무가 사라지고 이산화탄소 7천만 톤이 배출됐다"며 "정부는 새로 심은 나무가 배출된 탄소를 다시 흡수할 것이라 주장하지만 이는 수십 년이 걸리는 과정으로 향후 10여 년의 기후위기 대응 골든타임에 온실가스 배출을 오히려 늘릴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판결이 산업부의 무분별한 바이오매스 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며 "산업부는 바이오매스 퇴출을 향한 국제적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올해 REC 가중치 정기 개편에서 바이오매스 가중치를 일몰해 해묵은 논쟁의 마침표를 찍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