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시장에 ‘일본 공세’ 본격화, 현대차 기아 경쟁 부담 커져

▲ 25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앨리스턴의 혼다 자동차 2공장 정문 앞에 CR-V 하이브리드 차량이 서 있다. 혼다는 110억 달러를 투자해 전기차 생산 설비를 신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일본의 대표적 완성차 기업인 토요타와 혼다가 북미지역에 생산 거점을 늘리며 전기차 투자에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 전기차 판매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은 오는 10월 조지아주 전용 공장 완공이 예정돼 있는데 일본 기업의 공세와 마주하게 돼 경쟁에 더 큰 부담을 안게 됐다.

25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일본 혼다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110억 달러(약 15조1200억 원)를 투자해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공장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2028년부터 가동을 시작해 연간 최대 24만 대의 전기차를 제조하는 것이 목표다. 

아오야마 신지 혼다 글로벌 총괄 부사장은 캐나다에서 만든 전기차를 미국에도 판매해 2040년까지 모든 북미 판매량을 전기차 및 연료전지 차량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토요타도 미국 인디애나주에 14억 달러(약 1조9283억 원)를 추가로 투자해 3열 좌석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 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토요타는 미국 전기차 생산 일정을 당초 2025년에서 2026년 봄으로 조금 늦췄지만 투자 규모는 최근 증액한 것으로 파악된다. 

뉴욕타임스는 “토요타와 혼다는 그동안 하이브리드 차량을 강조해 왔는데 최근 투자는 모두 순수전기차(BEV) 부문에 집중됐다”고 분석했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은 그동안 전기차 사업에 진출이 늦고 투자에도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투자를 계기로 본격적 물량 공세를 시작할 채비를 갖췄다는 시각이 나온다.

혼다는 다른 일본 완성차 기업인 닛산과 전기차 연합을 구축해 비용을 줄이고 가격 경쟁력도 확보하겠다는 계획까지 내놓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중국 등 해외 전기차 기업들은 미국에 진출이 어려운데 일본 업체들이 이런 공백을 메울 것”이라며 “현지 자동차업체들이 전기차에서 고전 중이라는 점도 일본에는 확장하기 좋은 기회”라고 분석했다. 
 
미국 전기차 시장에 ‘일본 공세’ 본격화, 현대차 기아 경쟁 부담 커져

▲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위치한 현대차 제조 공장에서 한 작업자가 라디에이터 그릴에 부착된 차량 로고를 점검하고 있다. <현대차>

미국 전기차 시장은 수 년 동안 테슬라가 지켜오고 있지만 최근 가격 경쟁력에 약점을 보이며 점유율이 점차 하락하는 모습을 나타나고 있다.

현지 업체들인 GM과 포드도 전기차 사업에서 수익성 확보에 고전하며 각각 전기차 생산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시점을 애초 계획보다 늦춰 잡았다. 

이러한 상황은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전기차 사업에 기회로 작용했다. 일본 기업들이 전기차 진출을 본격화하기 전에 틈새를 공략해 빠르게 미국 시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자동차 평가업체 켈리블루북(KBB) 통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제네시스)은 2023년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9만4천 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테슬라에 이어 판매량 2위에 올랐다. 

점유율 기준으로 7.9%를 기록해 두자릿수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의 공세가 본격화되면 수 년 안에 판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나온다.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지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이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와 멕시코 등 북미 지역에 다수의 공장과 유통망 등 장점을 갖췄다는 점이 이런 관측의 근거로 꼽힌다. 기존 내연기관차 생산 시설을 전기차로 전환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의미다. 

토요타만 해도 2025년 완공이 예정된 노스캐롤라이나주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포함해 북미지역에 도합 14곳의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블룸버그는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전 세계에 걸쳐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북미에서도 기회를 충분히 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지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높다는 점도 강점으로 여겨진다. 켈리블루북이 선정한 2023년 최고의 자동차 브랜드에서 토요타와 혼다는 각각 ‘최고의 신뢰를 주는 브랜드’ 및 ‘종합적인 최고 브랜드’에 선정됐다. 

전기차 신모델에서 경쟁력을 갖춘다면 내연기관차 시장에서 누렸던 시장 지배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 또한 아이오닉과 EV 시리즈의 제품 경쟁력을 호평받으며 전기차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데 성공했지만 일본 기업들의 공세가 본격화하면 안심하기는 힘들다는 견해도 많다.

결국 현대차그룹이 오는 10월 가동을 예고한 조지아주 신공장에서 전기차 양산 체제를 빠르게 구축해 토요타와 혼다의 진출이 본격화하기 전에 미국 시장 선점을 얼마나 해낼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블룸버그는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글로벌 전기차 경쟁에서 경쟁업체들에 우위를 보이지 못했지만 그들의 미래 비전은 현실적이고 확고하다”라고 바라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