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사진)이 재집권하면 국내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올해 11월 미 대선에서 민주당 바이든과 대결, 재선할 가능성이 나오면서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국내 산업계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다시 격화되고, 기존 미국의 관세율도 인상돼 수출 위주의 국내 기업은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29일 워싱턴포스트 등 현지 보도에 따르면 최근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압승을 이어가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 시 모든 중국 제품에 60%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참모들과 논의하며 새로운 무역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60% 관세를 부과하면, 세계 경제는 트럼프 집권 1기 이상의 대혼란이 점쳐진다.
미국 싱크탱크인 택스 파운데이션은 “2018~2019년 무역전쟁은 엄청난 피해를 줬지만, 트럼프가 검토하는 관세 방안은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에도 관세를 일괄적으로 10%포인트 인상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국내 수출기업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은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1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대만은 미국의 반도체 사업을 전부 빼앗아갔다. 원래 우리가 직접 반도체를 생산했는데 이제는 90%가 대만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며 “세금이든 관세를 부과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국 반도체 기업들의 제조역량 강화를 위해 외국 반도체 기업에 규제를 가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는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된 미국 현지에 생산시설을 갖춘 기업에 대규모 인센티브를 주는 '반도체 지원법' 지원 대상이나 규모가 바뀔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3억 달러(약 23조 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고, 미국 정부의 구체적인 보조금 지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사업에서도 난관에 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는 2023년 10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에 별도 허가절차나 기한 없이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반입할 수 있도록 ‘검증된 최종사용자(VEU) 결정’을 내렸는데, 트럼프 정권으로 바뀌면 이같은 조치가 번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 시안 공장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40%를,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와 다롄 공장에서 각각 D램 40%와 낸드플래시 20%를 제조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면 바이든 행정부가 내린 조치 상당수가 바뀔 수 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 관련된 결정도 이에 포함된다”고 보도했다.
▲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 그동안의 전기차 및 배터리 관련 정책이 모두 폐기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비즈니스포스트> |
국내 자동차, 배터리 업계도 미국 대선과 정책 변화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백악관에 따르면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 법제화에 따른 한국 기업의 투자 규모는 약 555억 달러(약 72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IRA 전면 폐기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IRA 혜택을 노리고 미국 투자를 확대해 온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자동차, 배터리 제조기업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할 판이다.
미국에서 배터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IRA 보조금 권리를 제3자에게 매각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올해 약 1조7천억 원, 2025년 3조3천억 원 규모의 IRA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국내 수출 기업들은 지난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에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2018년 7월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된 뒤 1년 동안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감소폭은 –15.2%로 일본(-7.2%), 대만(-6.6%)보다 훨씬 두드러졌다.
당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의뢰받아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미-중 추가관세 부과로 한국의 대미·대중 수출 규모가 줄었고, 이로 인한 피해액은 18억3천만~32억6천만 달러(약 2조2천 억~3조9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023년 12월에도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당선할 경우, 그동안 전기차와 배터리 관련 미국 보조금 지원 정책이 모두 폐기될 가능성마저 거론된다”며 “미국에 투자를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인 한국 기업들은 의사결정 시 이러한 중대한 정치적 요인을 주요 변수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