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법원이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모든 혐의와 관련해 무죄를 선고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취재진과 만나 “당연한 귀결”이라며 “이렇게 명쾌하게 판단해 주신 재판부께 경의를 표한다”는 소회를 남겼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자신에게 제기된 47개 혐의와 관련해 무죄 선고를 받은 뒤 법원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26일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직권을 남용해 강제징용손해배상 재판에 개입하거나 재판거래를 하고 법관을 성향에 따라 분류해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었다는 등 모두 합쳐 47개 혐의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하급자들의 직권남용죄 혐의가 대부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설령 일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지시·가담 등 공범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봤다.
이번 재판으로 양 전 대법원장 구속기소 뒤 약 4년 11개월의 시간과 290회 넘는 재판 끝에 첫 판결이 내려졌다.
검찰은 2019년 2월 양 전 대법원장이 임기 6년 동안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에게 반헌법적 구상을 보고받았으며 이 가운데 일부를 승인한 것도 모자라 직접 지시까지 했다며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 기소했다.
이어 검찰은 2023년 9월15일 결심공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박병대 전 대법관에게는 징역 5년, 고영한 전 대법관에게는 징역 4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당시 결심공판에서 “이번 사건은 사법행정권의 최고책임자인 피고인들이 재판에 개입해 법관의 도리를 심각하게 훼손한 초유의 일이다”며 “징역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번 사건을 두고 "공소사실 전체가 수사권 남용의 결과"라며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사법부를 지키는 기념비적 재판으로 기억된다면 저는 그 고난을 오히려 영광으로 알고 있을 것"이라고 무죄 선고를 요청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의혹’으로 모두 47개 혐의를 받아왔다. 크게 보면 세 갈래로 나뉜다.
먼저 사법부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와 재판거래를 했다는 혐의다. 한일 관계 악화를 우려한 박근혜 정부에 부담이었던 강제징용 재상고심 판결 선고를 고의로 늦췄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또 양 전 대법원장의 뜻에 반하는 판사들을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해 관리하고 특정 법관 모임을 와해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혐의도 있었다.
여기에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 위해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을 활용해 내부정보 등을 보고하도록 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이번 선고공판은 시작부터 재판부의 최종 선고가 나오기까지 4시간27분이 소모됐다. 이에 오후 4시10분에 10분 동안 휴정이 선언되기도 했다. 선고공판이 휴정하는 것은 이레적 사안이다.
앞서 법원은 사법농단에 연루된 다른 법관들의 상당수 혐의에 대해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어 죄가 성립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이 무죄 선고를 받음에 따라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유죄를 판단을 받은 사람은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2명뿐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1948년 1월26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1970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8월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5년 11월 판사로 임용돼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로 근무를 시작해 사법연수원, 법원행정처, 부산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근무했다.
부산지방법원장을 거쳐 특허법원장으로 재직하다가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도 일했으며 퇴임 뒤 2011년 9월부터 제15대 대법원장이 됐다.
2017년 9월 대법원장 퇴임까지 임기가 채 6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일선 판사들의 성향을 분석해 명단을 관리했다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시작으로 ‘사법농단 의혹’에 휘말렸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