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을 비판하고 나섬에 따라 은행권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올해 초 은행권의 상생금융 바람도 윤 대통령의 ‘은행은 공공재’ 발언에서 비롯됐던 만큼 이번에 ‘시즌2’ 준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가계대출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 하락까지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나온다.
▲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에 비판하고 나섬에 따라 은행권의 상생금융 준비 움직임이 활발하다. 윤 대통령이 10월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
5일 DGB대구은행은 소상공인과 서민금융을 지원하는 상생금융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황병우 대구은행장은 전날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소상공인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도 했다.
상생금융 확대방안을 내놓은 것은 대구은행에 그치지 않았다. 최근 사흘 동안 은행권의 상생금융 방안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금융그룹은 이날 계열사별로 준비하고 있는 상생금융방안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 3일에는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주재 아래 상생금융과 관련해 긴급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4일에는 하나은행과 BNK금융그룹이 상생금융 방안을 내놨다.
금융권에서는 다른 은행들도 조만간 상생금융 보따리를 내놓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3일 연속으로 ‘은행 때리기’에 열을 올렸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소상공인이 은행에 대출을 갚는 일을 두고 ‘은행의 종 노릇’이라 표현하며 포문을 열었다.
이튿날인 31일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민금융 공급을 늘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부담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서울 마포 북카페에서 주재한 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국내 은행은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며 “독과점 행태는 정부가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은행권이 이처럼 상생금융 방안을 쏟아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금융소비자들의 눈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 쏠리고 있다. 주담대는 은행 가계대출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주담대 금리는 최근 5달 연속으로 오르며 가계의 허리를 휘어지게 만들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기준금리 동결에도 신규취급액 기준 예금은행 주담대 금리는 5월(4.21%)부터 9월(4.35%)까지 계속 올랐다.
앞서 정부의 은행 ‘이자장사’ 비판이 거셌던 올해 초에는 주담대 금리가 내린 적이 있다.
한은 기준금리는 1월부터 11월 현재까지 3.50%로 유지되고 있지만 올해 초에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을 필두로 정부의 압박이 거셌고 은행들은 가산금리 조정 등을 통해 대출 금리를 내렸다.
신규취급액 기준 주담대 금리는 올해 들어 1월(4.58%)부터 4월(4.24%)까지 4달 연속 내렸다.
당시 이 원장은 시중 은행들을 순회 방문했고 그 때마다 은행들은 제각기 상생금융 방안을 앞다퉈 내놨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2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면서 압력 수위를 높였다.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올해 초 은행들을 순회 방문했고 은행권은 이 원장의 방문과 맞이하면서 각각 상생금융 방안을 내놨다. 이 원장이 3월9일 서울 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현장간담회에서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금융감독원> |
모두
윤석열 대통령이 1월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은행이 지난해 급등한 기준금리 인상에 편승해 이자장사를 하고 있다며 ‘은행은 공공재’라고 주장한 뒤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은행권이 주담대 금리를 내리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최근 16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등 고공행진하면서 국내 시장금리를 밀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 금리와 국내 국채 금리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데 주담대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금리는 국채 금리에 영향을 받는다. 현재로서는 은행 자금조달비용이 늘어 대출금리 인하에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은행들이 가계대출 수요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최근 주담대 금리를 올렸다는 점도 당장의 주담대 금리 하락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가계대출 증가 주범으로 은행권의 대출경쟁을 꼽았다. 이에 불편한 시선을 받은 은행권은 지난달 중순 가산금리를 조정해 주담대 금리를 올리며 가계대출 디레버리징(줄이기)에 동참했다.
은행 관점에서는 가계대출 증가 주범으로 지목돼 금리를 올렸는데 이번에는 상생금융을 위해 도리어 낮춰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일각에선 대통령 발언이 이 때문에 정책 엇박자라는 말도 나온다. 인위적으로 대출금리를 조정하려 들어 ‘관치금융’의 폐해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은행권이 어떻게 움직일지, 대략적인 윤곽은 오는 16일을 전후로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 무렵 금융지주 회장들과 간담회를 갖는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