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철 SKC 대표이사 사장이 2027년까지 반도체 소재사업 분야에 배터리 소재보다 더 많은 투자를 예고하며 힘을 싣고 있다. 사진은 박 사장이 3월28일 서울 종로구 SKC 본사에서 열린 제5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올해 경영 계획을 보고하고 있는 모습. < SKC > |
[비즈니스포스트] 박원철 SKC 대표이사 사장이 새 성장동력으로 점찍은 반도체 소재사업에 기존 주력사업인 배터리 소재보다 더 많은 투자를 예고했다.
박 사장은 세계 최초의 반도체 글라스 기판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자회사 앱솔릭스의 기술력에 큰 기대를 걸고 신사업 중심의 성장 전략에 적극적으로 힘을 싣고 있다.
5일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SKC의 중장기 매출 목표와 사업계획 발표에서 반도체 소재에 중점적으로 투자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점은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4대 배터리 핵심 소재(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질)에 이어 전구체, 동박 등 배터리 소재 및 관련업체의 성장성이 크게 주목받는 상황에서 SKC는 반도체 소재를 미래 먹거리로 앞세웠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기관 투자자와 증권사 연구원을 대상으로 한 ‘SKC CEO 인베스터데이’를 통해 2027년까지 모두 6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반도체 소재에 2조 원, 배터리 소재에 1조8천억 원, 신규 인수합병(M&A)에 1~2조 원을 활용하겠다는 내용이다.
인수합병에 들이는 금액 역시 사실상 반도체 소재 관련한 투자로 볼 수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SKC는 현재 인수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반도체 테스트 부품기업 ISC 이외에 반도체 소재 분야의 추가 인수합병을 검토하고 있다.
2027년까지 반도체 소재에 투자하는 금액이 배터리 소재 투자금액의 최대 2배 수준에 이를 수 있는 셈이다.
SKC는 2020년 SK넥실리스(옛 KCFT)를 인수한 뒤 동박을 중심으로 한 배터리 소재사업을 향후 미래 핵심사업으로 꼽아왔다. 2027년 매출 목표에서도 배터리 소재 매출(7조 원)이 반도체 소재(4조 원)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박 사장이 반도체 소재에 투자를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점은 그만큼 미래 성장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박 사장이 SKC의 반도체 소재사업에 공격적 투자를 예고한 배경에는 자회사인 앱솔릭스의 기술력이 자리잡고 있다.
앱솔릭스는 2021년 11월 설립된 SKC의 반도체 기판사업 자회사다. 세계 최초 반도체 글라스(유리) 기판 상업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반도체는 여러 개의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와 함께 기판에 쌓여 하나의 부품으로 패키징된다. 현재 상용화된 반도체 패키지는 플라스틱 기판 위에 실리콘 중간기판과 MLCC칩을 쌓고 그 위에 반도체칩을 얹는 3층 구조로 구성된다.
반면 글라스 기판은 플라스틱과 실리콘 기판을 대체하며 MLCC 등 반도체 소자를 내장할 수 있고 그 위에 곧바로 반도체칩을 올리는 방식의 2층 구조가 가능해진다.
▲ SKC 자회사 앱솔릭스의 반도체 글라스(유리) 기판 모습. < SKC > |
글라스 기판 기반의 2층 구조는 반도체 패키지 두께를 4분의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표면에 더 큰 반도체 칩과 더 많은 메모리를 장착할 수 있어 동일 면적에서 성능이 더 우수한 패키징을 제작할 수 있다.
앱솔릭스는 반도체 글라스 기판을 통해 가파르게 성장하는 고성능 컴퓨팅(HPC, High Performance Computing) 반도체 패키징 시장에서 성장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성능 컴퓨팅 반도체는 데이터센터, 인공지능 서버, 자율주행 자동차 등에 활용된다.
시장조사기관 욜에 따르면 고성능 반도체 패키징 시장 규모는 2022년 80억 달러에서 2027년 150억 달러로 연평균 13.4%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기간 연평균 7.9% 성장률을 보일 일반 반도체 패키징 시장보다 가파른 성장이 예상된다.
앱솔릭스는 2023년 12월 완공 목표로 2억4천만 달러(약 3100억 원)를 투입해 미국 조지아주 커빙턴시에 연간 생산능력 1만2천㎡ 규모의 반도체 글라스 기판 1차 생산공장(SVM, Small Volume Manufacturing)을 건설하고 있다.
향후에는 3억6천만 달러(약 4700억 원) 규모로 2차 생산공장(HVM, High Volume Manufacturing)을 지어 반도체 글라스 기판의 연간 생산능력을 모두 7만2천㎡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박 사장은 전날 인베스터데이에서 동박, 생분해소재, CMP패드와 함께 반도체 글라스 기판을 SKC의 주력사업으로 꼽았다.
아직 생산을 시작하지 않은 글라스 기판을 주력사업에 포함할 만큼 박 사장이 미래 성공 가능성을 자신하고 있는 셈이다.
박 사장은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전시회 ‘CES 2023’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글라스 기판은 반도체 패키징 시장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며 “목숨을 걸고 반도체 글라스 기판 사업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도 SKC 반도체 글라스 기판의 높은 성장 가능성과 우수한 수익성 등에 주목하고 있다.
이동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SKC는 성장성이 큰 반도체 글라스 기판사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며 “공장 가동 뒤 정상 수율을 확보한다면 해당 사업의 영업이익률은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바라봤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