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트를 즐기는 노인들, DALL.E그림. <캐나다홍작가> |
[비즈니스포스트] 누구나 노인이 된다. 청년에서 중년이 되는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면 노년 역시 곧 눈앞에 펼쳐질 수 있다.
그러니 어떤 노년을 보내고 싶은지, 그러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떤 사회가 그 미래를 이루는 데에 더 이로울지 등을 일찌감치 따져볼 필요가 있다.
노인이 살기 좋은 나라를 1위부터 나열하면 핀란드, 덴마크, 네덜란드, 스위스, 호주, 오스트리아, 캐나다, 노르웨이, 뉴질랜드 순이다. 조사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상위권에는 유럽 최고의 복지국가들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이 포함된다.
한국은 조사에 따라 25위~60위로 결과가 들쭉날쭉하다. 다만 명확한 것은 안타깝게도 OECD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 그것도 OECD 평균을 큰 폭으로 넘어서는 1위라는 점이다.
굳이 숫자와 등수를 따지지 않더라도 서울의 휘황찬란한 고층빌딩과 철마다 돈 들여 조경하는 도심 공원 사이에서 매일 보이는 폐지 줍는 노인들의 모순적 풍경을 보면 답이 나온다. 한국에서 노인들의 지위와 행복도는 발전한 국가 수준에 비하자면 턱없이 낮다.
캐나다에 이민 와서 본 노인들의 모습은 한국 노인들과 많이 달랐다.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세금 내며 나이든 것은 비슷한데 그들이 받는 사회적 대우나 삶의 만족도는 꽤나 대조적이다.
캐나다에 이민 와서 처음 정착한 곳은 동부 바닷가 끝의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PEI)라는 관광지로 특히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제주도 3배 규모의 큰 섬인데 순한 이미지의 캐나다인들 내에서도 특히 친절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수년간 살며 느낀 흐뭇한 정서 중 하나가 바로 행복해 보이는 노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캐나다는 무조건 퇴직해야 하는 은퇴 나이가 없기에 나이 들어서도 원하는 만큼 일하는 이들이 꽤 많다. 동네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영어 학원에서는 타자를 한 50타 정도 치시는 듯한 여성 노인이 상담을 받고 학원을 안내해줬다.
이민자들을 위한 무료영어 수업의 내 담당 강사도 70대의 여성 노인이었다. 집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동네 변호사도 70대 남자였다. 이 밖에도 많은 노인들이 자기가 원하면 계속 일하고 사람들은 이를 존중하는 문화다.
타자가 느리고 눈도 어두운 사람이 무슨 민폐냐는 식의 몰상식한 비난은 상상할 수 없다. 서두르고 비난하는 한국식 일 문화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꽤 생경한 풍경이다.
물론 젊은이들이 많이 사는 토론토나 밴쿠버 같은 대도시에서는 상대적으로 노인들 수가 적겠지만 노년에 계속 일하고 배우고 활동하는 것이 한국보다 훨씬 쉽고 자연스럽다는 차이는 분명했다.
젊은 시절 실컷 일하고 노후대비도 해뒀으니 직업 없이 쉬고 즐기는 노년을 보내는 것도 멋진 일이다. 캐나다 노인들은 다양한 여가 문화 활동을 하며 사회문화적 주체로 살아가는 편이다.
지역 문화센터는 물론 댄스학원, 당구클럽, 영화 모임, 미술학원, 극장, 어디든 취미생활을 하는 노인들이 많다. 여름이면 관광지답게 뚜껑 없는 차를 타고 멋지게 드라이브하는 노인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노년들이 많기에 이런 일들이 더 쉽다.
캐나다는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주는 보조적 연금도 한국보다 다양하고 많지만 일반 연금제도도 한국보다 잘 되어있다. 한국도 최대 월 32만 원까지 나오는 기초연금이 있는데 캐나다는 최대 월 50만 원 정도까지 나온다.
캐나다에서 오래 살수록 이 액수가 높아지기에 이왕 이민 올 거면 일찍 오는 것도 이 부분에서는 유리하다.
이 외에도 개인과 직장이 한국처럼 반씩 낸 국민연금도 있고 무엇보다 수입의 18% 정도까지 매년 비과세로 개인 퇴직 연금(RRSP)을 들어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한국처럼 벌어서 자녀 교육비로 매달 수백만 원씩 쓰는 일이 없으니 정부가 권장하는 대로 절세되는 이 퇴직 연금을 꼬박꼬박 불입했던 이들이 많다.
노인들을 대하는 사회문화적 시선도 한국보다 따스하다. 생산력이 다했으니 무가치한 퇴물처럼 무시받는다거나 세대 간의 혐오 갈등이 빈번한 한국의 차가운 현실과는 많이 다르다.
▲ PEI 지역의 봄, 겨울이 긴 캐나다는 5월이 돼야 봄기운이 난다. <캐나다홍작가> |
캐나다에서는 어린이, 여성, 노인, 장애인, 반려동물 등 한국에서 소외되거나 덜 존중받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더 행복하게 살아간다. 이런 이유로 이민을 오는 이들도 꽤 많다. 아이의 인간다운 학창 시절을 위해,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등.
나는 미세먼지 때문에 환경이민을 온 거지만 오고 나서는 여성의 권리가 한국보다 높다는 데에서 삶의 질이 꽤나 높아진 경험을 하고 있다. 중년인 내게 곧 찾아올 노년의 안정적이고 존중받는 삶에 대해서도 기대하는 바가 크다.
한국에서 스타강사로 일할 때에 비해 수입은 1/10로 줄었지만 삶의 만족감은 몇 배로 높아졌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노인이 된다고 삶의 질이 갑자기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회의 정책의 영향을 받으며 우리의 어리고 젊은 시절 내내 쌓은 포인트가 반영되기도 하며 사회가 그동안 살아온 노년에게 주는 보장과도 연계된다. 그 사회에서 살며 보고 겪어온 주변 노년들의 평균적인 삶의 질이 우리의 미래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행복한 노인들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행복한 노인들이 많은 세상에서는 그들만이 아니라 중년의 나도 좀 더 안심하며 나이들 수 있다. 행복한 노인들이 많은 세상은 행복한 아이들, 행복한 여성들, 행복한 장애인들 등등 행복한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일 것이다.
존중과 배려, 복지와 안정성에 가치를 두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빠르고 효율적이지 못하더라도 한국보다 여유롭고 미소 짓게 되는 세상일 수 있다. 행복한 노인들이 많은 세상에서는 당신도 나도 더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캐나다홍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