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11월14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AP >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산업을 두고 강력한 무역제재와 보복조치를 서로 주고받는 상황을 이어가면서 한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이 미국 정부에서 압박을 받는 한편 중국은 이를 계기로 메모리 자급체제 구축에 더욱 속도를 내며 한국 반도체 기업에 더욱 불리한 환경이 펼쳐지고 있다.
26일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 마이크론을 겨냥한 중국의 무역보복 조치가 미국뿐 아니라 한국과 같은 동맹국에도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변곡점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당국은 최근 마이크론의 메모리반도체의 판매 제한을 명령했는데 메모리반도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정부가 최근 한국 정부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메모리반도체 중국 판매를 늘려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대체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비공식적 요청을 내놓았다고 전했다.
약 2만8500명에 이르는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며 북한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한국 정부가 이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이어졌다.
마이크론을 향한 중국 정부의 무역보복 조치에 맞서 새로운 규제로 대응하려는 미국 정치권의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의 마이크론 반도체 판매 규제는 중국을 향한 미국 의회 여론을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며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이 이미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여당인 민주당 소속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 이러한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실을 것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전망이 나왔다.
마이크론이 뉴욕주에 20년 동안 1천억 달러(약 132조 원)를 투자해 반도체공장을 설립하는 계획을 발표한 만큼 뉴욕주를 대표하는 척 슈머 원내대표가 마이크론의 이해관계를 적극 대변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 반도체산업을 향한 미국 정부의 추가 규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거나 시행된다면 중국도 다시금 더 강력한 대응 조치를 꺼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마이크론에 이어 미국 퀄컴도 중국에서 무역보복 조치에 따른 판매 규제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퀄컴은 마이크론보다 중국 의존도가 높아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 사이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안기고 있다.
미국 정부가 중국을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수단 가운데 하나는 지금과 같이 한국 반도체기업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이나 수출을 제한하는 일이다.
미국은 이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운영하는 D램과 낸드플래시 공장에 최신 공정의 반도체 시설투자를 할 수 없도록 규제했고 1년의 유예기간만을 부여했다.
또한 삼성전자가 미국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설립에 보조금을 받으면 중국에서 사실상 시설 투자를 지속하기 불가능해지는 미국 상무부 규제도 예정되어 있다.
▲ 삼성전자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반도체공장. |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의 반도체로 마이크론의 중국 판매금지 물량을 대체하지 않도록 압박한다는 것은 이미 이러한 전략이 가동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전체 매출과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 심화로 갈수록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 정부가 미국의 규제에 대응해 반도체 장비와 소재 등 공급망을 자체적으로 구축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도 중장기 관점에서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규제가 강화된 이후 자국 반도체장비 활용 범위를 넓히고 정부 지원을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자급체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가 내놓은 대중국 반도체 규제의 핵심은 중국이 미국 또는 일본과 네덜란드 등 동맹국의 반도체 장비 대부분을 수입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중국이 이러한 장비를 스스로 개발하고 생산할 능력을 갖추는 데 다소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는 미국의 규제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미국의 압박으로 중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메모리반도체를 사들이기도 어려워진다면 이런 노력에 더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타임스는 중국의 메모리반도체 자급률이 현재 15% 미만을 기록하고 있지만 정부가 이를 끌어올리기 위해 자국 기업을 향한 지원을 더 공격적으로 늘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결국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수출규제와 무역보복 조치를 활발히 주고받는 상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메모리반도체 실적에 이중으로 부담을 키우는 요인에 해당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중 갈등 사이에서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도 중국의 분노를 사지 않기 위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