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쓴맛을 좀 경험한 나이가 되니 웃음기도 로맨스도 하나 없는 영화 '분노의 포도'가 지루하지 않았다. 사진은 영화 '분노의 포도' 한 장면. |
요 며칠 전세사기 기사가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젊은 세입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까지 전해졌다.
올 초 오랜만에 이화여대(이대) 앞에 가게 됐는데 비어있는 가게가 많아서 놀랐다. 큰 도로에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도 썰렁한 기운이 역력했다.
대학시절 이대 앞은 헤어, 의상, 신발, 액세서리 등 미용과 패션의 유행을 선도하는 곳이었다. 머리를 하고, 옷도 몇 벌 구입하고, 떡볶이, 라면, 튀김을 푸짐하게 시켜 먹은 날은 실컷 호사를 부린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주말이었는데도 왁자지껄한 소음은 없었고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운 인파도 없었다.
평생을 ‘경알못’(경제를 알지 못하는) 인간으로 살아왔지만 코로나19 이후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경제 뉴스에도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다.
투기든 투자든 해 본 적이 없다 보니 부동산, 주식, 코인 가격이 널을 뛸 때도 남의 일로만 여겼다. 그러다 세상의 격랑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삶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세기 인류가 경제와 관련해 직간접 경험한 가장 충격적 사태는 ‘대공황’일 것이다. 휴지조각이 된 주식, 무료급식소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 거리를 헤매는 부랑아 등은 영화를 통해 익숙한 대공황의 이미지이다.
생각난 김에 대공황 시대를 다룬 영화 두 편을 다시 찾아봤다. 영화를 보면서 경제가 괴물의 모습을 하고 다가올 때 인간의 삶은 어떻게 뿌리째 흔들리는지 체감한다.
미국의 대문호 존 스타인벡의 대표작 '분노의 포도'는 책 출간 바로 이듬해 존 포드 감독에 의해 '분노의 포도'(1940)로 영화화 됐다. '역마차', '리오 그란데', '아파치 요새', '수색자' 등 웨스턴의 거장 존 포드는 대하 서사를 한 편의 영화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어린 시절 TV 프로그램인 주말의 명화에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무슨 내용인지 몰라 지루하다는 인상만 남아 있었다. 삶의 쓴맛을 좀 경험한 나이가 되니 웃음기도 로맨스도 하나 없는 이 영화가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는 대공황이 깊어진 1930년대 중후반 캘리포니아로 새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는 톰 조드(헨리 폰다) 가족의 여정을 보여준다.
가뭄과 모래 폭풍으로 몇 년 동안 흉작이 이어진데다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지주들은 땅을 은행에 넘겨 버린다. 은행에서는 철거 명령을 거부하는 농민들의 집을 포크레인으로 밀어버리고, 삶의 터전을 잃은 소작농들은 트럭에 초라한 가재도구를 싣고 줄줄이 서부로 향한다.
조드 일가는 트럭 한 대에 12명의 가족을 태우고 3000 킬로에 이르는 길을 떠난다. 그들은 66번 도로를 따라 오클라호마에서 뉴멕시코, 애리조나를 거쳐 마침내 캘리포니아에 다다른다.
멀고 먼 길을 위해 마련된 경비는 150달러가 고작이었다. 가난과 굶주림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럽지만 배고픈 아이들의 얼굴처럼 처참한 건 없다.
톰의 어머니가 임시 야영지에서 솥단지를 걸고 스튜를 끓이자 배고픈 아이들이 몰려온다. 스튜를 조금 남겨 아이들에게 주자 나무 막대기로 찍어 한입이라도 더 먹으려는 아이들의 아우성이 들린다.
조드 일가는 어렵게 캘리포니아까지 왔지만 기대와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높은 임금을 준다는 전단지 내용과 달리 일자리는 부족했고 고용주들은 넘쳐 나는 구직자들을 핑계로 임금을 계속 깎아내렸다.
영화는 열린 결말로 여전히 정착하지 못 하고 더 멀리 떠나는 조드 일가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 된다.
▲ 영화 '신데렐라 맨' 예고편의 한 장면 <신데렐라맨> |
대공황을 배경으로 한 또 다른 영화 '신데렐라 맨'(론 하워드, 2005)에는 굶주린 자식들을 바라봐야 하는 가장의 참담한 심경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분노의 역류', '파 앤드 어웨이', '아폴로 13', '뷰티플 마인드' 등을 연출한 론 하워드 감독답게 실화를 바탕으로 대중적이면서 감동적 이야기를 보여준다.
제임스 J. 브래독(러셀 크로우)은 헤비급 권투 선수로 승승장구하다가 공교롭게도 대공황이 시작되는 1929년 시합에서 패배한 후 4년째 내리막길을 걷는다.
아내의 장신구들로 가득 찼던 선반은 휑해진 지 오래됐고 수도와 전기마저 끊길 지경이 된다. 브래독은 손 부상이 낫지 않았는데도 생계를 위해 링에 올라간다. 하지만 형편없는 경기에 관중은 야유하고, 손은 다시 부러지고, 대전료도 못 받고, 선수자격마저 박탈 당한다.
권투를 할 수 없게 된 브래독은 막일을 하기 위해 부두에 나가지만 매일 일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은 긴급빈민구제기금까지 받아 보지만 3명의 아이들에게 먹일 식료품을 사기도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브래독의 아내는 전기가 끊기자 아이들을 처가에 보낸다. 브래독은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권투 흥행업자들이 드나드는 클럽에 찾아가 옛 동료들에게 구걸을 한다. 모자 안에 넣어주는 동전과 지폐를 받는 브래독은 한 인간으로서는 초라하지만 가장으로서는 부끄러울 것 없는 모습이다.
다시 권투를 시작하게 된 브래독은 ‘신데렐라 맨’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재투성이 천덕꾸러기에서 공주가 되는 신데렐라처럼 브래독도 패배의 아이콘에서 재기의 대명사로 거듭 난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이다.
브래독은 무엇이 그를 변하게 만들었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우유’라고 대답한다. 매일 배달 받는 우유병에 우유 대신 ‘요금 밀림’이라는 쪽지가 붙어 있던 아침을 떠올리며 하는 말이다.
아내는 조금 남은 우유병에 물을 채워 그날 아침의 우유를 마련했다. 휴먼 스포츠 드라마인 '신데렐라 맨'의 권투 시합 장면은 매끄럽고 드라마틱하게 연출된다. '록키'(존 G. 아빌드센, 1976), '분노의 주먹 Raging Bull'(마틴 스콜세지, 1980)과 더불어 권투 시합 장면이 잘 그려진 영화 중 하나다.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한 '분노의 포도'와 '신데렐라 맨'은 사실 여러모로 다른 스타일의 영화다.
'분노의 포도'의 톰 조드는 대공황이라는 초유의 사건을 겪으며 사회적 각성을 하게 된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차츰 깨닫고 자신의 소명은 무엇인지 고뇌한다. 이에 비해 '신데렐라 맨'의 브래독은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평범한 남성이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출발은 가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적 울타리가 무너지는 시대에 가족이라는 울타리마저 없다면 인간은 벼랑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연이은 비극적 뉴스를 보면서 울타리들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아 울타리를 단단히 정비할 수 있기를 빌어 본다.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