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김 사장이 최근 주주총회에서 액시엄스페이스와 국내 합작법인(조인트벤처)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합작법인의 구체적 사업내용을 두고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 사장은 "액시엄스페이스가 우주정거장을 세우는 지구 저궤도의 사업범위에서 공동 사업을 찾고 개발할 것이다"며 "우주정거장에 헬스케어 분야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액시엄스페이스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협력해 노후한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민간 시설로 대체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24년 첫 번째 민간 주거 모듈을 발사한 뒤 2030년 무렵 국제우주정거장을 완전히 대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향후 민간 우주정거장을 기반으로 다양한 산업에 관한 제조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김 사장의 말대로라면 합작법인은 이 시설을 '헬스케어' 용도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사업은 액시엄스페이스와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을 연결해 미세중력에서의 신약개발을 지원하는 것이다.
중력의 힘이 약해지는 미세중력 환경은 지구에서 할 수 없는 다양한 실험을 가능하게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순수한 단백질 결정을 생성하는 일이다. 단백질 기반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단백질을 만들어 구조와 기능을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지구에서는 중력으로 인한 침전, 대류로 단백질을 일정 크기 이상 성장시키기 쉽지 않다.
이에 따라 MSD, 일라이릴리, 브리스톨마이어스퀴브(BMS) 등 글로벌 제약사들은 일찍이 국제우주정거장을 찾아 실험을 수행해왔다. 미국 항공우주국이 발간한 '인류를 위한 국제우주정거장의 유용성 2022'에 따르면 2021년까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이뤄진 단백질 결정화 실험은 500여 건으로 전체 실험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 MSD가 국제우주정거장을 활용해 성장시킨 단백질 결정(오른쪽). 지상에서 실험한 것(왼쪽)보다 훨씬 균일한 크기와 분포를 보여준다. <국제우주정거장 미국국립연구소>
특히 MSD의 경우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세계적인 항암제 '키트루다'를 피하주사 제형으로 개발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를 확보했다고 2019년 발표한 바 있다. 키트루다 같은 항체 치료제를 피하주사 제형으로 만들려면 균일한 단백질 결정을 낮은 점도로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미세중력 환경을 활용해 여기에 필요한 조건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미세중력에서 일어나는 신체의 변화도 신약개발에 중요하게 활용된다. 예를 들어 생물의 골격은 미세중력에 노출되면 급속도로 약해진다. 이는 노화에 따른 골다공증을 단기간에 관찰하고 약물의 치료효과도 신속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암젠은 골다공증 치료제 '이브니티'와 '프롤리아'를 개발할 당시 미세중력 환경에서 동물실험을 거쳤다. 두 치료제 모두 성공적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획득했다.
아직 우주 개발이 초기 단계에 있는 시점에서도 이처럼 다양한 성과가 나오다 보니 제약바이오산업은 여러 산업 중에서도 미세중력 환경의 수혜가 가장 큰 것으로 여겨진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제약바이오산업이 우주기업과 파트너십을 통해 잠재적으로 연간 28억~42억 달러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분석을 지난해 내놨다. 이는 반도체와 식품(각각 4~6억 달러), 미용 및 개인 관리(6억~10억 달러) 분야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그러나 현재 국제우주정거장을 활용한 신약개발은 접근성이 좋지 않다. 장소에 도달하는 비용이 비쌀뿐 아니라 이용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한정돼 있다.
화공학 전문매체 C&EN은 "국제우주정거장에서는 7명가량의 우주비행사만이 주어진 시간에 모든 실험을 수행한다"며 "제한된 공간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는 지구상의 실험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통찰력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액시엄스페이스가 국제우주정거장을 민간 시설로 대체한 뒤에는 보다 많은 기업이 우주에서의 실험에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김 사장이 발표한 합작법인이 국내 기업과 액시엄스페이스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오는 까닭이다.
▲ 액시엄스페이스의 민간 우주정거장 예상 디자인. <액시엄스페이스>
김 사장은 앞서 2월 대통령 주재로 열린 우주경제 개척자 간담회에서 제약바이오 관련 우주정거장 활용방안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케어인스페이스(CIS)'로 확보된 기술을 우주에서 연구개발할 거점 확보를 위해 액시엄스페이스에 전략적 투자를 했다"며 "향후 우주정거장 내 한국만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어인스페이스는 보령이 액시엄스페이스와 함께 진행하는 우주 스타트업 육성 프로젝트를 말한다. 보령은 지난해 처음 케어인스페이스를 개최해 스타트업 6개를 선정하고 지분투자 등 지원을 제공했다. 케어인스페이스를 진행하는 동안 액시엄스페이스에 약 6천만 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전통 제약사인 보령이 이처럼 다소 동떨어져 보이는 우주산업에 힘쓰는 데 우려하는 의견도 물론 존재한다. 한 증권사는 보령이 액시엄스페이스에 투자한 규모가 너무 크다며 분석 대상(커버리지)에서 제외했다. 보령 주가도 최근 지속해서 하락하는 주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우주산업이 보령의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김 사장의 믿음은 굳건하다.
김 사장은 주주총회에서 "많은 분이 보령의 본업인 제약업과 너무 다른 우주에 투자해 기업을 망치는 게 아니냐고 한다"면서도 "언제 이익이 날지, 이익 규모가 얼마나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믿고 기다려주면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