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하는 반도체 지원법이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거두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기업의 현지 공장 건설을 지원하는 반도체 지원법 도입을 추진한 뒤 12월 현재까지 모두 2천억 달러(약 262조 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통해 당초 목적대로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중국에 맞서 전 세계 첨단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는 역부족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 도입 계획을 내놓은 8월 이후 유치한 투자 규모는 약 2천억 달러에 이른다.
해당 금액은 전 세계 기업들이 발표한 반도체 및 소재 생산공장 신설과 증설 계획을 포함한다. 이를 통해 모두 16개 주에서 4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 예상된다.
바이든 정부가 처음 520억 달러의 예산을 들이는 반도체 지원법 도입 목표를 발표했을 때만 해도 부정적 여론이 우세했다.
미국에 반도체공장을 운영할 때 드는 높은 인건비 등 비용을 고려한다면 세계 주요 반도체기업의 투자를 이끌기는 역부족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 지원법이 이미 2천억 달러의 공장 투자를 이끌어냈고 앞으로 추가 투자도 이뤄질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결국 성공적 정책에 해당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산업협회는 "미국 내 반도체공장 건설은 미국 경제와 공급망 안정화에 큰 힘이 될 것"이라며 "관련 기업들의 투자 속도도 최근 더욱 빨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업체인 대만 TSMC가 미국 애리조나주에 신설하는 공장 규모를 기존 120억 달러에서 400억 달러까지 늘리기로 발표한 점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월 초 열린 TSMC의 투자발표 행사에 참석해 반도체 지원법이 이끌어낸 성과를 강조하고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밝혔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에 170억 달러를 들여 건설하고 있는 파운드리공장도 이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지원법 시행에 따른 미국 정부 차원의 지원을 노리고 진행되고 있다.
인텔과 마이크론, 웨스턴지디털과 글로벌파운드리와 NXP 등 세계 주요 반도체기업들이 투자에 잇따라 가세하면서 바이든 정부의 정책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다만 반도체기업들의 미국 내 공장 투자가 바이든 정부 및 여당인 민주당의 정치적 성과를 넘어 실효성까지 갖출 수 있을지 여부를 두고서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 삼성전자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내부. |
미국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이 전 세계에서 미국의 공급망 안정성 및 첨단 기술 주도권을 강화하고 중국과 벌이는 경제 대결에서 승기를 잡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명분을 앞세웠다.
이를 통해 미국 의회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가까스로 법안을 통과시켜 계획대로 내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미국 의회전문지 더힐은 최근 논평에서 "미국 정부가 반도체산업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일은 충분한 결과를 낼 수 없다"며 "반도체를 만드는 공장은 표면상으로 보기보다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공정이 최대 수천 가지에 해당하는 만큼 미국이 완전한 자급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에 반도체 및 소재, 부품공장을 짓는 기업들이 현지에서 완성할 수 있는 공정은 범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대부분의 공정은 여전히 아시아 등 지역에 의존해야 한다.
반도체 지원법 대상 기업들이 정부 보조금을 노리고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하는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대규모 지원에 자극을 받은 중국 정부가 이보다 더 큰 규모의 반도체 지원 정책을 내걸고 현지 반도체기업 및 글로벌 기업의 투자 유치에 나선 점도 반도체 지원법의 부작용에 해당한다.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반도체기업들에 모두 1430억 달러 규모의 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앞으로 5년 동안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국 정부보다 두 배가 넘는 예산을 들여 현지에 공장을 보유한 반도체기업들의 역량 강화를 추진하면서 세계 반도체산업 주도권 경쟁에 맞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정책전문지 디펜스원은 "중국은 미국 반도체 지원법을 오히려 기회로 삼아 자국 반도체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미국 정부가 중국의 반격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바이든 정부가 결국 반도체 지원법을 '자충수'에 그치도록 하지 않으려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기업이 미국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정부 보조금 이외에 추가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데 속도를 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정치전문지 더디플로맷은 "미국 정부는 반도체 지원법을 효과적으로 시행할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반도체기업의 자발적 투자를 위한 시장 환경을 만들어내는 일이 더 효과적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