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YMTC가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와 소프트웨어 등을 사실상 완전히 사들일 수 없게 됐다. YMTC의 반도체 생산공장 홍보용 이미지.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가 중국 메모리반도체 전문기업 YMTC를 블랙리스트에 올릴 것으로 보인다. YMTC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와 소프트웨어 등을 사들이는 게 사실상 어려워지게 되는 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장기적으로 YMTC와 경쟁을 피할 수 있게 됐지만 단기적으로는 미국 규제가 YMTC의 투자 확대를 자극해 반도체업황에 악재로 반영될 가능성도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4일 여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국 상무부가 YMTC를 포함한 중국 기업을 이르면 이번 주 안에 블랙리스트에 올리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대상은 미국 기업의 기술을 활용할 수 없게 된다. 별도의 허가 절차를 신청할 수는 있지만 승인을 받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YMTC는 반도체 개발과 생산에 필요한 장비 및 소프트웨어를 미국 기업에서 사들이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생산 투자를 벌이는 일도 상당히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는 10월 중국을 겨낭한 새 수출규제를 통해 중국기업이 미국의 첨단 반도체장비를 수입하기 어렵도록 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면 미세공정을 활용한 고성능 반도체뿐 아니라 구형 반도체를 생산하는 장비의 수입도 거의 불가능해진다. 미국 정부가 규제 강도를 더욱 높인 셈이다.
YMTC의 반도체 투자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수 개월 전부터 미국 정치권에서 힘을 받았다. 애플이 아이폰에 YMTC의 메모리 탑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런 여론을 반영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반도체 규제 강화를 서둘렀고 결국 중국이 ‘국가 챔피온’이라고 앞세우던 YMTC를 직접적으로 겨냥하게 됐다.
YMTC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공격적으로 생산 투자를 확대해 왔고 첨단 기술인 232단 3D낸드 개발과 양산에도 주요 경쟁사를 앞서 나가면서 다른 국가 반도체기업을 위협해 왔다.
특히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선두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YMTC의 거센 추격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기업으로 꼽혔다.
미국의 규제가 YMTC의 반도체시장 진출 확대를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역할을 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에 반사이익으로 돌아오게 된 셈이다.
그러나 YMTC의 미국산 장비 및 소프트웨어 수입 제한이 단기적으로 투자 확대를 자극해 공급 과잉을 일으키고 글로벌 반도체업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YMTC가 미국 정부의 규제 강화를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대량의 반도체장비를 사들인 만큼 당분간 공격적 수준의 투자를 이어가기 충분한 물량을 쌓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YMTC는 미국의 수출 규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올해 하반기부터 수 개월에 걸쳐 해외에서 수입하는 장비 재고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해당 기간에 사들인 반도체장비 및 웨이퍼 등 소재 물량은 최소한 1년 정도에 걸쳐 생산라인에 투자하고 가동할 수 있는 분량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가 YMTC를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킨 것이 결국 YMTC가 투자를 더욱 공격적으로 확대하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중국 YMTC의 낸드플래시 메모리반도체 생산공장. |
YMTC는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보다 앞서 232단 3D낸드 양산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내년부터 비슷한 수준의 낸드플래시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따라서 YMTC가 기술 우위를 확보한 데 따른 성과를 극대화하려면 미리 확보해둔 장비와 소재 물량을 최대한 232단 3D낸드 반도체 생산 투자에 들여 우위를 확보하는 일이 효과적이다.
이를 통해서 글로벌 주요 고객사들의 고성능 메모리반도체 수요를 선점한다면 미국 규제로 중장기 투자 확대를 진행하기 어려워진 데 따른 약점을 일부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규제가 유지되는 한 YMTC가 현재 확보한 반도체장비 물량을 소진한 뒤 추가 투자를 진행하거나 232단 3D낸드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을 상용화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잠재적으로 위협적 경쟁사인 YMTC와 대결을 피하게 된 만큼 중장기 사업 전망이 밝아지게 됐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YMTC의 집중적 투자에 따른 낸드플래시 공급 과잉이 나타나 업황 악화와 가격 경쟁을 이끌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에 모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충분하다.
세계 메모리반도체 업황은 글로벌 경제 성장 부진과 IT기기 수요 감소 영향으로 내년까지 부진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더욱 큰 악재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바이든 정부도 YMTC가 메모리반도체를 원가 이하에 판매해 미국 마이크론 등 경쟁사에 압박을 더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경쟁사가 YMTC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반도체 시설 투자를 당분간 더 축소하거나 메모리 출하량을 줄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만약 이들이 YMTC에 맞서 반도체 물량 경쟁을 지속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메모리반도체 재고량이 급증하게 돼 반도체 업황 부진이 예상보다 더 장기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메모리반도체 전문기업들이 인내심을 두고 YMTC가 기술 개발 및 투자에 한계를 맞을 때까지 기다린다면 지금과 같은 과점체제는 굳건히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