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수출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유럽 등 한국의 주요 수출지역에서는 탄소배출 감축을 명분으로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다. 사진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 두 번째)이 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연합(EU)의 통상 관계자들을 만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과 관련해 의견을 나누는 모습. <산업통상자원부> |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경제가 수출에서 고전하는 가운데 탄소중립이 국제 통상환경의 주요 현안으로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와 유럽연합(EU)이 세우는 탄소장벽이 내년부터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국 수출은 더욱 험로를 걸을 가능성이 크다.
4일 산업통상자원부 통계를 보면 1월부터 11월까지 누적 무역수지 적자는 425억6100만 달러다.
올해 들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긴 기간인 8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진 데 따른 결과다.
올해 누적 무역수지 적자는 이미 연간 기준으로 역대 무역수지 적자 최대치인 1996년 206억2400만 달러를 크게 웃돌고 있다.
게다가 최근 상황도 좋지 않다. 전년 동월 대비 수출액도 10~11월 두 달 연속으로 감소했다. 두 달 연속으로 수출액이 감소한 것은 코로나19 확산 시기인 2020년 3~8월 이후 처음이다.
한국 경제가 내년까지 수출 고전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우세하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2일 올해 무역수지 적자는 450억 달러, 2023년 적자는 138억 달러라는 전망을 내놨다.
무역협회 전망에 따르면 올해 무역수지 적자의 상당 부분이 원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원자재 가격의 상승에 따른 것이고 내년에는 에너지 원자재 가격의 하락이 예상되는 만큼 무역수지 적자 폭은 줄어든다.
하지만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세계 경제가 불황을 겪으면서 한국의 수출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4일 내놓은 ‘본격적인 수출·내수 동반 침체의 시작’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세계 경제 불황과 교역 시장의 수요 위축이 현실화하면 우리 수출 경기의 침체 국면 진입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한국의 2023년 수출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에는 ‘탄소중립’ 등 환경 현안도 있다.
이미 미국은 탄소배출 감축을 명분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마련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르면 북미산 무공해 자동차만 세제 혜택이 주어지므로 한국의 자동차 수출은 큰 타격이 예상된다.
자동차가 반도체, 철강, 화학, 정유, 조선 등과 함께 한국의 13대 주력산업인 만큼 국내에서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월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인플레이션 감축법 관련해 한미 협의채널이 긴밀하게 가동되고 있다”며 “세계 경제의 하방 압력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한미 사이 긴밀한 경제협력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관련 협의를 위해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 윤관석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정부·국회 합동 방미대표단을 5일부터 9일까지 파견하는 등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도 한국 수출에 큰 타격을 줄 요인으로 꼽힌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탄소배출을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탄소배출 규제가 약한 개발도상국의 제품이 유럽연합에 수입돼 가격 경쟁력이 발생하는 상황을 막겠다는 의도로 마련되는 제도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당장 내년 1월1일부터 시범시행이 시작된다. 2025년까지 진행되는 시범시행 기간에는 탄소배출에 따른 관세가 부과되지는 않으나 유럽연합에 수출하는 기업에 탄소배출량을 보고할 의무가 부과된다.
특히 탄소국경조정제도에 따른 규제대상 품목이 철강,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전력 등에 더해 유기화학제품, 플라스틱 등으로 확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한국 수출에 부정적이다. 철강은 물론 석유화학 제품 등이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놓고도 정부의 대응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은 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게라시모스 토마스 EU 조세총국 총국장을 만나 “탄소국경조정제도가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 통상규범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며 “보고의무 등 수출 기업에 추가적 행정 부담을 지우는 조항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