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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건희가 필요해진 삼성전자

김희정 기자 mercuryse@businesspost.co.kr 2014-07-08 19: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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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이건희가 필요해진 삼성전자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일본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05년 ‘일본 전자업계의 위기’라는 기사에서 “왜 일본에 이건희 같은 경영자가 없는가”라고 자문했다. 삼성전자가 2004년 벌어들인 돈이 일본의 전자업체 7개사가 번 돈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나자 일본에서 이렇게 반성적 탐구가 이어졌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한 1987년 당시 삼성전자는 일본기업의 기술을 빌려 겨우 TV를 만들던 회사였다. 그런데 이 회장은 일본을 비롯한 기술 선진국들을 제치고 삼성전자를 세계 1등으로 올려놓았다.

이 회장이 삼성전자를 이끌던 지난 26년 동안 세계 유수의 전자회사들이 쓰러졌다. 삼성전자도 그런 위기를 맞았고 극복했다. 삼성전자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 회장의 결단이 있었다.

◆ ‘양’에서 ‘질’로, 휴대폰 화형식

삼성전자는 1988년 국내 최초로 자체 개발한 휴대전화를 내놓았다. 당시 국내외 시장은 모토로라가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한다”며 신수종사업으로 휴대전화를 지목했다. 이에 따라 제품개발에 박차를 가한 삼성전자는 1994년 10월 ‘애니콜’ 브랜드를 만들어 첫 제품을 내놨고 수개월 만에 시장점유율 30%를 장악했다.

하지만 삼성은 모토로라가 차지하고 있는 시장점유율을 가져오기 위해 질의 개념이 아닌 양의 개념으로 휴대폰을 만들었다. 무리한 제품출시로 양적 성장만 추구한 결과 그해 삼성전자 휴대폰의 불량률은 11.8%까지 치솟았다.

높은 불량률을 보고받은 이건희 회장은 크게 화를 냈다. 이 회장은 불과 1년 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독일까지 가서 ‘질의 경영’을 부르짖었는데 아직도 삼성은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윤우 삼성전자 상임고문은 “신경영 선언이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질보다 매출과 성장위주의 양적 팽창 분위기였다”며 “성장하지 않고 품질위주로 간다는 건 국민은 물론 산업계의 전반적 의식으로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 회장은 불량품을 무조건 새 제품으로 바꿔주라고 지시했다. 무려 15만 대에 달하는 불량품이 수거됐다. 당시 휴대폰은 대당 150-200만 원 대였다. 회사의 손해가 컸다.

이 회장은 수거된 15만 대의 휴대폰을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쌓으라고 지시했다. 2천여 명의 임직원이 지켜보는 앞에서 해머를 든 10여명이 전화기를 내리쳤다. 조각난 휴대폰에 불까지 붙였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500억 원어치의 휴대폰들이 녹아내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됐던 ‘휴대폰 화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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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당시 이를 지켜본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내 자식 같은 무선전화기가 타는 것 같았다. 그 화형식이 계기였다. 우리 가슴 속에 불량에 대한 안이한 마음을 털끝만큼도 안 남기고 다 태워버렸다. 새로운 출발이었다. 지금의 삼성은 거기서 시작됐다."

그해 삼성전자 애니콜은 국내시장 점유율 52%를 기록하며 모토로라와 노키아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2011년 삼성전자는 애플을 제치고 세계 스마트폰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 한발 늦은 스마트폰, 어떻게 따라잡았나

삼성전자는 애플보다 한발 늦게 스마트폰시장에 뛰어들었다. 애플은 2007년 아이폰을 선보인 이후 매년 신제품을 내놓으며 세력을 넓혔다.

삼성전자는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전략 스마트폰 ‘옴니아’를 내놓았지만 수많은 버그로 ‘옴레기’(옴니아+쓰레기)라는 별명을 얻으며 참패했다. 이듬해 출시된 ‘옴니아2’는 삼성전자 자체 운용체제 ‘바다’를 탑재했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애플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글이 연일 인터넷 게시판을 달구었다.

이건희 회장은 2008년 삼성특검으로 경영에서 물러났으나 2010년 경영에 복귀하며 스마트폰 일류화를 강하게 주문했다. 삼성전자는 심혈을 기울여 스마트폰을 만들었다.

삼성전자는 구글과 협력해 2010년 6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갤럭시S’를 출시했다. 이때부터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아이폰 천하는 아이폰과 갤럭시의 양강체제로 바뀌었다. 급기야 삼성전자는 갤럭시S 출시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애플을 제치고 스마트폰 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업계관계자는 “갤럭시S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삼성전자의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패스트 팔로워란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을 일컫는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에 이어 갤럭시S2 갤럭시S3 갤럭시S4로 이어지는 제품을 매년 선보였다. ‘갤럭시 그랜드’, ‘갤럭시 팝’ 등 다양한 보급형 모델도 빠르게 내놓아 제품군을 다양화했다.

여기에 대화면시장을 겨냥한 새 제품군 `갤럭시노트` 시리즈도 가세했다. 한 타입 제품밖에 출시하지 않는 아이폰에 비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넓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제조 경쟁력이다.

애플은 부품을 수입해 중국 등에서 제품을 조립한다. 2012년 아이폰5의 공급이 지연됐던 것도 부품을 제때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수직계열화를 갖추고 있어 애플에 비해 제조에 강점이 있다.

삼성전자는 이를 활용해 스마트폰 라인업 다양화를 시도했다. 프리미엄 제품부터 중저가 보급형 제품까지 모든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컨설팅회사의 한 간부는 “삼성전자는 부품 생태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 강점”이라며 “10~20개 모델을 시장에 내놓고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삼성전자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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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옴니아는 2008년 11월 출시됐다.

◆ 반도체 사업의 운명을 건 결정

이건희 회장은 1977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후 쉴 새 없이 일본을 드나들며 반도체 전문가들을 만났다. 1983년 기흥공장을 건설하고 10개월 후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3번째로 64K D램 독자개발에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1986년 1메가D램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 일본과 기술 격차는 계속 줄었지만 수익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 이를 뒤집을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반도체의 정보를 저장하는 셀을 아래로 파내려가며 쌓을 것이냐, 위로 쌓아올릴 것이냐를 두고 선택해야 했다.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던 IBM과 도시바 등 대부분의 기업들은 아래로 파내려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반대로 마쓰시다, 후지쯔 등은 위로 쌓아올리는 방법을 택했다. 이 회장은 장고 끝에 “복잡한 문제지만 이럴 때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하자”며 “위로 쌓아올리는 방법이 더 쉽다”며 위로쌓기를 택했다.

결과는 적중했다. 아래로 파내려가는 방식을 택한 회사들은 2006년~2008년 사이 반도체사업을 접어야했다. 삼성전자는 1993년부터 지금까지 세계1위 메모리기업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 대표적 자본집약형사업인 반도체의 경우 최고경영진의 의사결정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성패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변곡점마다 이 회장이 보여준 결단력은 세계시장을 석권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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