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법원의 판단을 근거로 들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추진하고 있는 '노란봉투법' 실효성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파업 등에 나선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국내외 손해배상 소송 가운데 정당한 행위는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않거나 불법 행위더라도 사유에 따라 그 책임을 경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10월18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노란봉투법 개정 촉구 '손배사업장' 긴급 기자회견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1일 불법 쟁의행위 관련 손해배상 해외 사례와 국내에서 2009년부터 2022년 8월까지 기업과 국가, 제3자 등이 노동조합, 간부, 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및 가압류 사건의 실태조사 2차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부는 국회의 노란봉투법 논의를 돕기 위해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이번 발표는 지난 4일 손해배상 소송 및 가압류 현황만 발표한 1차 결과에 이어 판결이 선고된 사건을 상세히 분석한 것이다.
14년 동안 제기된 손해배상 소송은 모두 151건 이었으며 판결이 선고된 것은 63건이었다. 이 중 기각 판결은 24건, 인용 판결은 39건이었다.
기각 판결 24건 가운데 13건은 정당한 행위로 보고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다. 나머지 11건 중 7건은 불법 행위는 맞지만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손해와 상당한 인과 관계가 없었다.
인용된 39건 가운데 28건은 불법 쟁의행위, 11건은 불법행위로 판단돼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쟁의행위는 노사간 의견 불일치로 노조가 벌이는 파업이나 태업, 점거, 집회 등을 말한다. 불법행위는 업무방해, 명예훼손, 상해, 손괴 등이다.
법원은 불법 쟁의행위이더라도 손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을 때에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일반 조합원이 단순히 노무 제공을 멈춘 것만으로는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사용자의 귀책 사유, 불법 행위 동기 등을 참작해 책임을 경감했다.
인용된 39건 가운데 26건은 노조 등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해 최소 20%에서 최대 90%까지 손해배상액이 줄었다. 이 가운데 14건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조의 직접고용 요구 파업 관련 사건으로 40%에서 60%까지 책임이 줄었다.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 원인은 '사업장 점거'가 가장 많았다.
사업장 점거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은 31건(49.2%)이었으며 이어 집회·시위·농성 14건(22.2%), 파업 11건(17.5%) 순이었다.
사업장 점거를 이유로 청구된 31건 가운데 28건(90.3%)은 인용돼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금액상으로는 전체 손해배상 청구 인용액(332억2천만 원)의 98.6%(327억5천만원)에 달했다. 사측이 사업장 점거에 따른 생산 차질을 손해배상 액수에 포함시켰기 때문으로 보인다.
불법 쟁의행위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됐을 때는 주로 '수단'이 문제였다.
불법 쟁의행위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28건 가운데 25건이 '수단이 부당하다'는 이유로 인용됐다. 이 중 위력 등을 사용해 사업장을 점거한 사례가 22건이었다.
주체가 부당하다는 이유로 불법 쟁의행위가 인정된 판결은 8건이었다. 이 가운데 7건이 사내 하청노동자 노조가 원청에게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벌인 쟁의행위였다. 7건 가운데 6건이 현대차 사내하청노조의 파업인데 이 사건들에서 재판부는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 근로계약을 맺은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단체교섭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면책을 법률로 명시한 해외 사례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부는 "대부분 국가에서 정당한 쟁의행위는 민사상 책임을 면책한다"면서도 "불법 쟁의행위에 면책을 규정한 해외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업장 점거 등도 위법하다고 판단해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고 있다"며 "아울러 손해배상 범위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입법례는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국가에서는 폭력과 파괴행위 이외에 사업장 점거도 위법하다고 판단해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과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쟁의행위의 목적과 절차가 위법하면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대부분 국가에서 불법행위에 책임이 있으면 노동조합뿐 아니라 개인의 책임이 인정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일반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청구 사례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에 한정해 손해배상 책임을 면책하거나 손해배상 범위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입법례는 찾을 수 없었다. 영국은 상한액을 두고 있지만 개인이 아닌 노조에 적용한다. 다만 개인의 상해나 재산 소유·점유 등에는 적용이 제외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