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바이오 내재화 행정명령은 국내 바이오 제조업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
[비즈니스포스트] 미국이 바이오 제품 자급을 위한 행정명령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우려됐던 미국 이외에 나라에서 생산된 바이오의약품에 대한 제재가 실제 시행안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SK바이오사이언스 등 국내에서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해 미국에 공급하는 기업에 새 행정명령이 미치는 영향은 당분간 제한적인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된다.
백악관이 현지시각 14일 발표한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의 세부계획을 보면 전체 2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미국내 바이오 제조 및 연구개발 역량을 끌어올리는 내용들로 구성됐다.
이번 행정명령이 당초 ‘미국에서 발명된 모든 것을 미국에서 만들겠다’는 취지로 운을 뗐던 만큼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미국이 아닌 나라에서 만들어진 바이오 제품의 수입 또는 판매를 규제하는 정책이 나올 것을 우려했다.
특히 미국 제약사가 개발한 바이오의약품을 위탁생산하는 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미국 정부는 제약바이오업계의 예상보다 온건하게 투자를 통해 바이오 산업을 육성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한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바이오시밀러(생체의약품 복제약) 등 바이오의약품의 수입을 제한할 경우 미국의 높은 약가를 완화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기업이 위탁생산을 맡긴 바이오의약품에 대한 제재는 미국의 피해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형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14일 보고서를 통해 “바이오시밀러는 고가의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 대신 가격경쟁력이 핵심인 의약품이다”며 “만약 제재의 대상이 된다면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으로 의약품 가격 인하를 추구하는 미국 정부 방향과 대치되는 조치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CDMO(위탁개발생산)기업에서 생산, 수출되는 의약품의 개발사가 미국 기업일 경우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연구개발을 이미 미국에서 마친 의약품을 위탁생산하는 것이 미국 기업의 매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물론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현지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이 충분히 늘어날 경우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SK바이오사이언스 등 국내 바이오업체들의 위탁생산 수요가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지원 규모를 보면 당분간은 미국에 의미 있는 수준의 위탁생산 경쟁기업이 등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를 통해 바이오 제조 인프라 구축에 투입되는 금액은 향후 5년 동안 10억 달러(약 1조4천억 원)에 그친다.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대규모 바이오의약품 제조시설의 건설비용을 지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인천 송도에 4공장을 짓는 데는 1조7천억 원 이상이 들어갔다.
10억 달러가 모두 바이오의약품 제조 인프라에 투자되는 것도 아니다. 바이오산업은 바이오의약품뿐 아니라 바이오연료, 바이오소재 등 다양한 분야로 구분되며 이번 행정은 그 모든 분야에 대한 지원을 포함하고 있다.
로이터는 미국 제약사들이 중국 등 해외에 맡긴 바이오의약품 생산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최대 180억 달러에 이르는 일회성 비용과 매해 인건비 120억 달러가량을 감당해야 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최근 생산을 외주화하고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추세인 미국 기업들이 이번 지원을 계기로 자체 생산능력 확충에 나설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다만 미국의 바이오산업 육성은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따른 일회성 지원만으로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앞서 8월 미국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서명을 통해 ‘반도체와 과학법’을 공표했다. 이 법안은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 등 반도체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들에 무려 2800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을 투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반도체 못지않은 미래산업으로 꼽히는 바이오 분야에도 이와 유사한 후속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백악관은 바이오산업이 2030년 글로벌 제조업의 3분의 1을 차지해 약 30조 달러 규모 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