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4일 오후 대구 중구 김광석 거리에서 당원들과 만나 발언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 방식으로 지역 당원들과 시민들을 만났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이른바 ‘윤핵관’ 사이 갈등이 봉합 불가능한 단계로 접어들면서 당내 계파 분화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여의도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집권 초반의 당내 분열은 국정 장악력을 위축시킬 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
4일 국민의힘 안팎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 전 대표와 윤핵관의 대립이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민의힘은 새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위해 당헌·당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5일 전국위원회에서 당헌·당규 개정안이 의결되면 8일 새로운 비대위가 출범한다.
하지만 이 전 대표가 전국위 개최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을 법원에 제출한 상태라 전국위에서 안건이 통과되더라도 비대위가 무효화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앞서 출범했던 비대위도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비대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된 전례가 있다.
비대위 출범 여부와 무관하게 당내 잡음은 쉽사리 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 전 대표의 징계와 비대위 추진 등 일련의 과정에서 이 전 대표와 윤핵관 측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만큼 양쪽 모두 싸움을 쉽게 중단하기 어려워졌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3일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서 “이 전 대표와 윤핵관 둘 중 하나는 죽어야 게임이 끝날 것 같다”고 바라봤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런 국민의힘 당내 갈등이 계파 분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윤 대통령을 뒷받침해 줄 당내 세력이 지지부진한 탓에 당내 반대 세력이 활동할 공간이 넓어졌다는 뜻이다.
대개 집권여당의 세력 균형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리되는 게 일반적이다.
일단 대통령선거 후보 경선에서 대선후보로 결정되면 당내 세력 균형이 후보를 중심으로 쏠리게 되고 후보가 당선돼 집권하게 되면 대통령의 친위 세력이 당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는 여당 내 세력판도 형성이 이전 정부들과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조짐이 나타난다.
윤 대통령을 든든하게 뒷받침해 줄 당내 세력이 애초부터 미약했는데 친위 세력을 자처하는 윤핵관조차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체제가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데다 윤핵관 측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커지면서
권성동 원내대표,
장제원 의원 등의 입지도 좁아진 모양새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뉴스토마토의 의뢰를 받아 8월30~31일 이틀 동안 전국 성인 1031명을 대상으로 국민의힘의 향후 지도체제에 관해 물은 결과 ‘
이준석 대표 체제로 가야 한다’는 응답이 48.4%로 가장 많았다.
‘새 비대위 체제로 가야 한다’는 의견은 32.5%, ‘잘 모름’은 19.2%였다.
이 대표의 추가 징계와 관련해서는 ‘징계 반대’가 52.0%, ‘징계찬성’이 36.5%, ‘잘 모름’이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전 대표에 우호적 태도를 보이는 정치인들이 ‘당내 반윤’으로 세력화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3일 당 비대위 전환에 반대하는 당원 모임 ‘국민의힘 바로 세우기’의 토크콘서트에서 “전당대회를 맞이해 진지를 만들고 아군을 만들어내서 우리가 당을 장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준법절차 이행보다 이 전 대표 제명에 더 열을 낸다면 우리 당은 위헌 정당, 반민주 정당에 더해 치졸한 꼼수 정당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며 새 비대위 추진에 반대 의견을 냈다.
우여곡절 끝에 비대위가 출범하더라도 이후 윤핵관이 당권을 장악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여론조사기관 넥스트위크리서치가 KBS광주방송과 UPI뉴스 의뢰로 8월30~31일 이틀 동안 전국 성인 1천 명에게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 적합도를 물은 결과 유승민 전 의원이 24.8%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다음으로
이준석 전 대표가 13.6%, 나경원 전 의원이 13.5%,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12.3%로 집계됐다.
이밖에 김기현 의원 4.9%, 조경태 의원 3.8%,
장제원 의원 3.5%, ‘없음/모름’ 23.7%였다. 이 조사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유 전 의원과 이 전 대표 본인의 득표율이 만만치 않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원내 인사들도 윤핵관과 거리를 두는 게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여기에 안철수 의원과 같은 전국구 인물도 세력 균형의 한 축을 담당할 여지가 있다. 안 의원은 비대위 전환에 반대하며 윤핵관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가뜩이나 집권 초반 국정 지지율이 이례적으로 낮은 상황에서 당의 전폭적 지원도 받기 힘든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노태우 정부 때처럼 조기 레임덕에 빠질 우려도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출신과 이념이 다른 정파를 한데 모은 이른바 ‘3당 합당’을 추진했다. 이로써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했지만 화학적 결합이 이뤄지지 않은 탓에 줄곧 당내 계파 갈등을 빚었고 노 전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윤 대통령의 상황이 그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그나마 여소야대 국면은 해소했지만 윤 대통령은 적어도 2024년 총선 때까지는 거대 야당과도 부딪혀야만 하는 형편이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들과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