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현 기자 naforce@businesspost.co.kr2022-08-08 14: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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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미국과 중국의 갈등 고조에 LG이노텍, 삼성디스플레이 등 국내 전자부품업체들이 불똥을 맞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본격적으로 보복조치를 취하면서 LG와 삼성의 주요 고객인 애플이 아이폰14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 미국과 중국의 갈등 고조에 LG이노텍, 삼성디스플레이 등 국내 전자부품업체들이 불똥을 맞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애플 아이폰 이미지.
8일 니케이아시아 등 해외언론을 보면 애플은 최근 대만 협력업체들에게 원산지를 ‘대만(Taiwan)’ 대신 ‘대만, 중국(Taiwan, China)’이나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 등과 같이 중국산으로 표기할 것을 요청했다.
애플은 “수입신고서에 ‘대만산’이라는 문구를 붙이면 선적 자체가 거부될 수 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중국 세관 당국은 수입신고서와 포장재, 관련 서류 등에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대만(Taiwan)’과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 등의 표기를 금지하고 있다
애플의 이와 같은 움직임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따른 중국의 보복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애플은 현재 전체 매출의 약 20%를 중국에서 거두고 있다.
애플 하청업체들은 생산지 표기 수정을 위해 제품의 일부 또는 전체를 대만으로 다시 보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이폰14 출시가 예정일인 9월에서 더 늦춰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미 애플의 위탁생산업체인 페가트론 쑤저우 공장은 중국의 표기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일부 부품수급에 차질을 빚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해외 IT매체 엔가젯은 “애플은 2019년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던 시기에 iOS에서 대만 국기 이미지를 삭제하는 등 과거에도 중국 공산당을 달래려 했다”며 “아이폰14 출시를 앞둔 시기에 생산지 표기 문제 등으로 인한 추가 생산 지연은 애플에 재앙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아이폰14 출시 지연은 LG이노텍이나 삼성디스플레이 등 국내 전자부품업체에도 대형 악재가 될 수 있다.
특히 애플을 최대 고객사로 둔 LG이노텍은 최근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양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LG이노텍은 아이폰의 카메라모듈을 공급하고 있는데 LG이노텍 전체 매출에서 애플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기준 74.8%에 이른다.
특히 올해 출시되는 아이폰14프로 시리즈는 후면 메인 카메라의 화소수 상향이 예정돼 있어 LG이노텍은 이에 따른 판매가격 상승까지 노리고 있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처음으로 전면 카메라모듈 공급까지 담당하면서 아이폰14 흥행에 따른 기대감이 더욱 높아진 상황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카메라 모듈, 렌즈 등 아이폰14 관련 핵심 부품업체들의 아이폰14 초기 수주 물량을 고려하면 아이폰14 초도물량은 지난해 아이폰13 대비 15% 증가한 9천3백만 대로 예상된다”며 “애플에 카메라모듈을 공급하는 LG이노텍은 수혜를 입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 LG이노텍의 카메라모듈. < LG이노텍 >
아이폰14에 들어가는 중소형 올레드패널을 가장 많이 공급하는 삼성디스플레이도 미·중 갈등에 유탄을 맞을 수 있다.
애플은 아이폰14에 탑재될 2억500만 개 이상의 올레드 패널을 확보하기 위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중국 BOE를 납품업체로 선정했다.
아이폰14에는 저온다결정실리콘(LTPS) 올레드 패널이, 아이폰14프로맥스에는 저온다결정산화물(LTPO) 올레드 패널이 탑재되는데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이폰 14 4개 모델에 쓰이는 패널을 모두 공급하는 유일한 회사다.
게다가 경쟁사인 LG디스플레이가 아이폰14 패널 초기 공급에 문제를 겪고 있어 삼성디스플레이가 담당하는 비중이 당초 계획보다 더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궈밍치 대만 TF인터내셔널증권 연구원은 지난 7월20일 “삼성디스플레이와 BOE는 LG디스플레이의 아이폰14 패널 외관 문제로 인한 초기 공급 공백을 상당 부분 메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이폰에 메모리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도 아이폰14 출시 지연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애플은 아이폰14에 들어가는 D램 LPDDR5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으로부터 공급받는다. 모바일 메모리반도체는 전체 D램 시장의 35~40%를 차지하는 가장 큰 시장이다.
아이폰14에는 처음으로 LPDDR5가 탑재되는데 판매단가가 기존 LPDDR4보다 높기 때문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아이폰14 시리즈가 많이 판매될수록 수익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중국이 이번 생산지 표기 문제를 시작으로 미국 기업에 본격적으로 제재를 가하기 시작한다면 주요 부품을 공급해오던 국내 업체들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IT매체 GSM아레나는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서 애플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TSMC의 회장과 페가트론 고위급 임원을 만난 것이 문제를 더욱 키운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의 이번 조치는 향후 더욱 격렬해질 무역전쟁의 시작일 수 있다”고 바라봤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