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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S그룹 주력계열사 |
“LS그룹이 출범한 지 10년이 되는 현재 이토록 참담하고 부끄러운 날은 없었습니다.”
구자열 LS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그룹창립 10주년 기념식에서 고개를 떨궜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2003년 LG그룹에서 계열 분리해 10년 만에 그룹 규모를 세배 이상 키워온 만큼 축하와 박수를 받아야 할 자리였지만, 분위기는 무거웠다. 그만큼 지난해 터진 JS전선의 원전비리가 LS그룹에 미치는 영향은 컸다.
◆JS전선의 문제는 곧 LS의 문제
가장 큰 문제는 원전비리 소송에 따른 손해배상금의 규모와 기업이미지 추락이다.
지난해 5월 검찰은 원전부품 비리 수사에 본격 착수하면서 LS그룹의 위기도 시작됐다. 수사 결과 LS전선의 자회사인 JS전선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전 1·2호기, 경북 경주시 신월성 원전 1·2호기에 케이블을 납품하면서 시험 성적서를 조작한 혐의가 드러났다. 이 때문에 신고리 원전 등 원전 3기 가동이 갑작스럽게 중단됐다.
원전 가동 중단은 더 큰 후유증으로 LS그룹을 향해 돌아왔다. 우선 원전 가동 중단으로 엄청난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서 LS그룹이 감당해야 할 배상금의 규모 역시 커졌다. 가동이 중단된 원전에서 원자력 대신 액화천연가스(LNG) 등 대체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2조5,000억원 가량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또한 신고리 원전 3·4호기의 시공이 지연되면서 총 피해규모가 4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11월 불량 케이블을 납품해 원전 가동을 중단시킨 책임을 물어 JS전선에 1,2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한수원은 또 신고리 원전 3·4호기 불량케이블 교체비용 및 전기판매 손실액 등 총 1조670억원에 대해서도 소송을 준비 중이다.
더불어 원전 가동 중단으로 지난 여름 전력대란이 발생하면서 무더위에 시달린 국민들의 원성도 높아졌다. 원전 가동 중단의 책임은 JS전선은 물론 모회사인 LS전선은 물론 LS그룹으로까지 번졌다. LS그룹에 ‘원전 비리’라는 꼬리말이 붙게 된 것이다.
이처럼 파문이 컸기에, 구자열 회장이 이번 사태를 그룹 분리 이후 최대의 난관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원전비리 발생 이후 구 회장은 공개석상에서 연신 고개를 숙이고 속죄했다. 업계에서는 구 회장이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마침내 구 회장은 지난 6일 오너 일가가 사재를 털어 JS전선을 자진 상장폐지하고 1,000억원 가량의 원전기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JS전선’ 상장폐지라는 결단을 통해 정부에 추가 소송은 하지 말아달라고 읍소함과 동시에 LS그룹 전체로 ‘원전비리’ 이미지가 번지는 것을 막고자 한 것으로 보고 있다.
◆LS그룹의 성장에 LS전선이 있었다
LS그룹은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구태회, 고 구평회, 고 구두회 명예회장 등 삼형제가 2003년 11월 LG그룹에서 LG전선그룹으로 분리하면서 출발했다. 이후 2005년 그룹 명칭을 LS그룹으로 변경했고 2008년에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현재 이들의 아들인 구자홍 LS 미래원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구자엽 LS전선 회장 등이 경영을 맡아 그룹을 이끌고 있다.
LG그룹에서 분리돼 LS그룹으로 홀로 선 이후 10년동안 LS그룹은 큰 성장을 이뤘다. 지난 2003년에 비해 그룹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배, 3배로 늘리며 자산 기준 재계 13위 그룹이 됐다.
LS그룹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끈 것은 주력 계열사인 전선부문의 LS전선과 LS산전, 에너지 부문의 예스코와 E1이다. 이 4개 계열사의 매출 합계는 LS그룹 전체 매출 29조원의 65.5%에 이른다. 2008년 8조7,000억원이던 4개사 매출은 2012년 19조원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나며 그룹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4개사 모두 2008년부터 2012년까지 4년 동안 매출을 50% 이상 늘려왔다. 특히 LS전선은 같은 기간동안 435.9%라는 엄청난 증가율을 기록하며 그룹의 중심기업으로 자리잡았다. LS전선은 LS엠트론과 분리되면서 계열편입된 2008년 1조477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 뒤 2009년에는 3조1,000억원, 2011년에는 8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4년 동안 매출을 5배 이상 늘렸다.
이를 바탕으로 LS전선은 세계 3위 케이블 업체로 발돋움했으며 LS그룹은 전선 중심의 그룹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그런 만큼 지난해 일어난 원전비리 사건은 창립 후 10년간 순풍에 돛단배 가듯 순항을 거듭하던 LS그룹에게 최대 위기다. JS전선을 떼어내는 초강수를 둔 것도 모회사인 LS전선으로 불길이 옮겨지는 것을 조기 진화하지 못하면 그룹 전체가 휘청일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구 회장의 이번 위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앞으로 LS그룹의 미래 항로의 방향이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