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다음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까지 3~4주 남아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어 그 사이 나타난 시장 반응을 보고 결정하겠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자이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단행 이후 16일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마친 뒤 한 말이다.
▲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왼쪽)과 이창용 한국은행총재. |
이 총재는 그동안 기준금리를 급격히 끌어올리는 데 신중한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미국의 공격적 금리인상 기조와 국내 물가의 고공행진에 대응하기 위해 이 총재가 이전에는 고려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이상의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전개될 수 있는 기준금리 인상의 '경우의 수'를 따져보고 한국경제 상황에서 가능한 시나리오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16일 한국은행 안팎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이날 자이언트스텝을 밟고도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다시 자이언트스텝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예고해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 기준금리를 추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15일부터 이틀 동안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마친 뒤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했다.
이에 미국 기준금리는 기존 0.75~1.00% 수준에서 1.50~1.75% 수준으로 높아졌고 한국과의 기준금리 격차도 0.00∼0.25%포인트로 크게 줄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늘 관점으로 볼 때 다음 회의에서 0.5%포인트 또는 0.75%포인트(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가장 높다”며 제2의 자이언트스텝 가능성을 예고했다.
◆ 한국은행도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에 나설까
이 총재가 7월14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미국과 같이 한 번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를 올린다면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역전이 일단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연방준비제도가 7월2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다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를 인상한다면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는 또 같아진다.
그 다음 금융통화위원회는 8월에 예정돼 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9월에 회의를 연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관련 회의가 한달 간격으로 엇갈려 열리는 상황에서 '경우의 수'를 따져 보면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나오겠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9월에도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9월부터 한국과 미국의 금리가 역전되는 상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또 한가지 고려할 변수는 과연 이 총재가 0.75%포인트라는 '초유'의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할 것인가 이다.
시장에서는 이 총재가 0.75%포인트를 한 번에 올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고 있다.
이 총재가 0.5%를 인상하는 빅스텝조차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상황이며 급격한 금리인상이 주택담보대출을 안고 있는 대출자들이나 취약계층의 이자 상환에 큰 부담을 주고 국내 경기회복세를 둔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은?
0.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도 이제껏 가능성만 극소수에서 조심스럽게 언급되고 엄두도 못낸 수치였는데 미국의 자이언트스텝 시행으로 현실적 수준의 인상안이 돼 버렸다.
이 총재가 7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린다면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역전 시기는 7월 말로 앞당겨질 수 있다.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0.5%포인트를 연달아 올리는 것은 이 총재에게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후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역전된 상황이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도 나온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될 수 있다. 금리가 역전되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이 대거 빠져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총재는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역전을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바라보고 있다.
과거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역전된 사례를 살펴봤을 때 금융시장의 위험성이 높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올투자증권의 채권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19년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0.75%포인트(한국 1.75%, 미국 2.5%) 차이로 역전됐을 때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은 계속 들어왔다.
이 총재도 인사청문 질의서에 답변하면서 “국내 펀드메탈이 양호하고 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이 유럽과 남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아 일각에서 우려하는 자본유출은 제한적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 총재도 기준금리 역전 폭이 너무 크게 장기간 벌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어 국내 기준금리를 미국처럼 급격하게는 인상하지는 못하겠지만 단계적으로 올려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박석길 JP모건 금융시장운용부 본부장은 15일 보고서에서 “한국은행이 7월 빅스텝에 이어 8월과 10월, 1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추가로 인상해 연말 기준금리가 3%에 도달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