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전 회장이 별세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LG그룹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구 전 회장의 정신과 뜻이 남아있는 것이다.
19일 LG그룹에 따르면 구본무 전 회장 별세 4주기인 20일 그룹 차원의 차원의 별도행사는 진행되지 않는다.
LG그룹 관계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회사 차원에서 여는 별도의 행사는 없으며 개개인이 추모하는 방식으로 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생전에 과도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멀리하고 소탈했던 고인의 뜻을 따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구 전 회장은 ‘정도경영’으로 기업인들에게 모범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로 지금까지도 다양한 일화가 회자되고 있다.
구 전 회장은 평소 “부정한 방법으로 1등 할 거면 차라리 2등을 해라” “기업은 국민 신뢰 없이는 영속할 수 없다” “경영환경이 어렵다고 사람을 안 뽑거나 함부로 내보내서는 안된다” 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기업 인수합병이나 매각에서도 이러한 철학을 유지했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다른 기업을 인수할 때 최대한 낮은 가격에 사려고 한다. 특히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경우에는 가격을 후려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구 전 회장은 2000년 데이콤 인수, 2004년 LG투자증권과 LG카드 매각 등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가격 등 조건보다는 회사의 정상화에 초점을 맞췄다.
LG그룹에선 구 전 회장이 경영진들에게 "살 때 너무 깎으려고 하지 마라, 그리고 팔 때 너무 비싸게 받으려고 하지 마라. 너무 비싸게 받으면 그 회사가 경영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당부했던 일화가 전해진다.
이런 일화도 있다. 계열사 사장단 전략회의에서 돈이 되는 주류사업에 진출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구 전 회장은 “우리까지 주류 사업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고 이를 채택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주류·담배·무기제조 등은 구조적으로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취약한 산업으로 분류되는데 구 전 회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LG그룹의 신사업 진출을 두고 ESG경영를 고려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 2012년 4월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구자경 LG 명예회장(앞줄 왼쪽 세 번째)의 미수연(88세)에 LG그룹 오너 일가가 참석한 모습.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앞줄 왼쪽),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이사(앞줄 오른쪽). 구광모 LG그룹 회장(뒷줄 가운데). < LG >
구본무 전 회장의 이런 정도경영 철학은 2018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국회 청문회에서 대중에게 각인됐다.
구 전 회장은 2016년 12월6일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에 출석해 솔직하면서도 당당하게 ‘소신발언’을 해 많은 국민들로부터 호감을 얻었다.
구 전 회장은 당시 주요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과 관련한 하태경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질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면서도 “기업에 돈 요구하는 정권, 국회에서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구 전 회장이 오랜 정경유착 관행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가능했던 발언으로 여겨졌다. 그 뒤 하 의원은 개인적 친분이 없는 데도 구 전 회장 타계 당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그 이유로 청문회장에서 '이 시대의 큰 기업인'이라는 인상을 받은 점을 들었다.
또 구 전 회장은 당시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을 결정하며 ‘LG의 애로사항을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데 노력해달라”고 회신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는 구 전 회장의 평소 성품과 경영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일화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구 전 회장은 재벌에게 가장 민감한 지배구조나 상속 등에서도 좋은 선례를 남겼다.
LG그룹은 2003년 국내 대기업집단 최초로 지주사체제로 전환해 투명한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국내에 만연했던 상호출자, 순환출자 등의 고리를 선제적으로 끊어낸 것인데 이는 LG그룹이 박근혜 게이트에도 큰 타격을 받지 않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