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서방국가 중심의 국제 경제 제재에 맞서 한국, 일본, 영국, 미국 등을 비우호국으로 정해 국내기업들의 부담이 커지게 됐다.
러시아는 비우호국가로 지정한 나라의 기업과 개인들에게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로 부채를 상환하고 거래대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원화와 비교해 루블화 가치가 떨어진 상황에서 우리기업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푸틴 러시아 대통령.
8일 타스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당국은 비우호국 기업과 개인에게 루블화로 채무를 갚고 거래대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대통령령을 내렸다.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는 우크라이나 침공 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제재가 이어지면서 폭락한 상태여서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대규모 환차손을 보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1루블은 14~15원 수준이었는데 현재 8원 대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 기업 가운데 특히 피해 가능성이 곳으로는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가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러시아에서 기아 20만5801대, 현대차 17만1811대를 판매해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러시아에서 인기가 높은 기업이다.
러시아 정부가 한국을 비우호국가로 지정하면서 현지 판매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지 생산부분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차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서 연간 20만 대의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경제 제재로 부품 조달이 더욱 힘들어져 1~5일 현지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9일 생산을 재개하려고 했으나 가동이 연기됐다. 현재로서는 재가동 시점을 예상하기 힘든 상황이다.
삼성전자도 러시아의 비우호국 지정에 사정권 안에 있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공장에서 TV를 생산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 스마트폰 및 TV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탁기와 냉장고 등 생활가전 분야에서는 선두권에 위치해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당장은 시장에서 환차손을 염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 있는 만큼 예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조선3사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국내 조선3사들이 러시아에서 받을 대금이 8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20년 말 이후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은 러시아에서 쇄빙 LNG선을 대거 수주한 바 있다. 이들 규모는 대략적으로 전체 2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삼성중공업은 러시아의 대규모 LNG 개발 프로젝트에 5조 원 넘는 설비공급게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주와 건조에 시간이 걸리는 조선업 특성상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조선업은 건조기간이 길기 때문에 당장 조선사들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전쟁과 경제제재가 장기화 될 경우 손해가 구체화 될 수 있는 만큼 법적 조치 등을 검토해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러시아의 비우호국 명단에 오른 나라는 한국, 미국, 캐나다, 영국, 우크라이나 일본, 호주를 비롯한 45개 나라다.
러시아의 비우호국에 대한 제재는 루블화 결제뿐 아니라 앞으로 더 추가될 수 있어 개별 기업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