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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독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사업이 기로에 섰다. 개발에 박차를 가했지만 예상보다 성능이 떨어져 상용화가 불투명해졌다. 손해를 감수하고 부품 내재화를 위해 사업을 강행할지는 구 부회장의 선택에 달렸다.
LG전자가 독자 개발한 모바일 AP인 ‘오딘’의 상용화 일정을 오는 10월로 연기했다고 17일 알려졌다. 당초 LG전자는 대만 파운드리 업체인 TSMC를 통해 오딘을 양산하고 오는 7월 이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LG전자가 전략 스마트폰인 ‘G3’를 계획보다 앞당겨 출시함에 따라 전체 일정이 미뤄졌다는 것이다.
독자 모바일 AP 개발은 구본준 부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다. 구 부회장은 평소 “기초 기술 역량을 가져야 완성품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LG전자는 구 부회장의 주문에 따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시스템 반도체 연구소’를 중심으로 2012년부터 독자 모바일 AP 개발에 주력했다.
업계에선 오딘 상용화가 늦춰지는 가장 큰 원인으로 예상보다 떨어지는 성능을 꼽는다. 현재 개발된 오딘은 G3에 적용된 QHD 디스플레이를 지원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발열 문제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고 업계는 전했다. 아직 G3와 같은 LG전자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탑재될 만큼의 성능에는 미치치 못한다는 것이다.
오딘을 주력 제품에 적용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LG전자는 내부적으로 보급형 모델에 오딘을 탑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 부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장에서 성능과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전략 스마트폰에 바로 탑재하는 것은 부담이 큰 편”이라며 “보급형 모델에 먼저 도입한 뒤 시장 반응을 살피며 적용 범위를 넓혀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보급형 모델에만 오딘을 장착하게 되면 LG전자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모바일 AP 사업이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연간 출하량이 1천만 대를 넘어야 하는데 이는 보급형 모델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란 것이다. 글로벌 판매 1천만 대 돌파는 G3의 전작인 ‘G2’도 달성하지 못한 목표이다.
대안으로 다른 업체에 모바일 AP를 공급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LG전자의 모바일 AP는 기술력에서 퀄컴을 뛰어넘지 못하고 가격 면에선 후발 주자인 중국 업체들에 밀린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용 모바일 AP 시장은 이미 퀄컴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퀄컴은 지난해 전 세계 모바일 AP 시장에서 53.6%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를 굳건히 지켰다.
중국 업체인 미디어텍과 스프레드트럼은 각각 9.7%와 4.3%의 점유율로 3위와 5위를 차지했다. 이들 업체들은 중저가 모델에 집중해 중국과 인도 등 신흥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업계에선 LG전자의 오딘 탑재 스마트폰이 오는 10월에도 출시되지 못한다면 독자 모바일 AP 개발의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딘 상용화가 늦어질수록 LG전자와 선두업체들 간의 기술격차가 점점 더 벌어져 결국엔 따라잡기 어려울 거란 설명이다.
LG전자의 독자 모바일 AP 사업 성공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철수선언을 하기도 어렵다. 독자 모바일 AP 개발은 하드웨어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필수적이다.
LG전자는 삼성전자나 애플과 달리 아직 독자 모바일 AP가 없다. 사실상 퀄컴이 LG전자에 모바일 AP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이 때문에 LG전자는 그동안 부품조달 능력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가격협상에서 퀄컴이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독자 모바일 AP 개발에 노력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