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전 총장 측은 13일 고발청부 의혹을 언론에 제보한 조성은씨와 박지원 국정원장 등을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윤 전 총장 측의 국정원 개입 주장을 거들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원장이 모종의 코칭을 한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박 원장이 8월11일 서울 모 호텔에서 제보자를 만났다는데 공교롭게도 8월10일, 12일 제보자의 휴대전화에서 캡처된 메시지들이 언론에 공개됐고 이는 야권 대통령선거후보와 야권 인사 공격에 사용됐다"고 덧붙였다.
앞서 조씨는 12일 SBS 뉴스에 출연해 "사실 9월2일이라는 날짜는 우리 원장님이나 제가 원했던 거나 제가 배려받아서 상의했던 날짜가 아니거든요"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윤 전 총장 쪽은 국정원 개입설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윤 전 총장 쪽이 이처럼 고발청부 의혹을 국정원의 공작이라 주장하고 나선 것은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판단에 따른 역공으로 보인다. 여기에 본인이 국가정보원의 핍박을 받는다는 이미지를 구축해 반문재인 세력을 결집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실제 윤 전 총장은 검찰총장 재직 당시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정직처분까지 받았다. 정당한 수사를 정권이 탄압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윤 전 총장은 이번 고발청부 의혹 역시 정권에 핍박받는 이미지로 반문재인 세력을 결집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있다. 최소한 정치공방을 통해 지금의 고발청부 의혹에 '물타기'에 성공할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선후보 경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기에 상황이 예전과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당내에서 흘러나온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치열한 경선 경쟁이 펼쳐지고 있어 국민의힘 지도부도 윤 전 총장의 방어에만 몰두할 수 없다. 당장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압수수색을 무한정 막을 순 없는 노릇이다.
당 내부에서도 윤 전 총장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12일) 경북 구미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우리당을 공범으로 엮으려고 짜는 프레임에 넘어가면 바보 같은 짓"이라며 "후보 개인 문제에 당이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윤 전 총장을 향해 "개인 문제인 고발청부사건을 당까지 물고 들어감으로써 당이 앞으로 큰 피해를 보게 생겼다"고 비판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13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문재인 정권이 야당 대선후보를 음해하기 위한 짓이라면 우리 당이 힘을 합쳐 저항하는 게 맞지만 후보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면 후보의 문제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과 당의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말이다.
다만 그는 국정원 선거개입과 관련해서는 "공수처가 됐든 검찰이 됐든 박 원장을 압수수색하고 사건 배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야당 입장에서 밝혀야 할 문제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윤 전 총장이 주장하는 국정원 개입 의혹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까지 있다.
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13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윤석열캠프가 오버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정원장이 굳이 나서서 뉴스버스에서 사고로 터진 사건을 공작화했겠느냐"며 "윤석열 캠프 측은 공격을 하더라도 국민들이 다 보고 있기 때문에 뇌피셜을 하더라도 합리적 수준에서 적절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조씨가 박 원장을 잘 따르고 정치적 멘토로 생각했기 때문에 상의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당내에서는 윤 전 총장과 당 지도부가 국정원 개입설을 계속 주장하려면 추가 '사실'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은 제보자 조씨와 박지원 국정원장의 식사 만남, 조씨의 방송 인터뷰 언급 등 두 가지뿐이다. 뭔가 더 나와야 국정원 개입설을 더 이어갈 동력이 생긴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제보자 조씨가 공수처 등에 제시한 텔레그램 대화방 문서 등 증거가 뚜렷하다는 점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공수처가 증거를 기반으로 수사에 속도를 낸다면 마냥 국정원 이야기만 할 수는 없다. 고발장을 누가 썼는지 윤곽이 드러난다면 여론은 작성자에게 눈길이 쏠릴 공산이 크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이날 교통방송의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오랜 정치 경험에서 이번 사건 처럼 증거가 뚜렷한 사건은 없었다"며 "빨리 털지 않으면 대선까지 계속 국민의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서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