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원 손해보험협회 회장이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의 법제화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는 의료계의 반발로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만 제도적 환경 변화와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국회 문턱을 넘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3일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정 회장은 국회와 정부를 오가며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4차산업혁명시대에 낙후된 방식으로 소비자의 불편이 계속되고 있다”며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돼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가 신속히 도입될 수 있도록 국회를 비롯해 정부, 의료계와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여러 인터뷰 등에서 꾸준히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를 반드시 이뤄내야 할 핵심과제로 꼽으며 이를 통해 소비자 편익을 높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9일에는
최영무 삼성화재 대표이사 사장,
조용일 현대해상 대표이사 사장,
김정남 DB손해보험 대표이사 부회장,
김기환 KB손해보험 대표이사 사장,
김용범 메리츠화재 대표이사 부회장,
강성수 한화손해보험 대표이사 등과 함께 윤관석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 박상욱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와 조찬간담회에서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는 환자 요청에 따라 의료기관이 의료비 증명서류를 전자적 방식으로 보험사에 전송하는 것으로 말한다.
실손의료보험은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면서 크게 늘어나 연간 1억 건 이상이 청구되고 있다. 하지만 전산상태로 청구되는 것이 아니라 서류로 진행되기 때문에 보험사가 일일이 시스템에 입력해야 한다.
소비자들도 복잡한 청구절차에 따른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2018년 보험연구원의 소비자 설문조사에서도 약 90%가 청구 불편 등으로 소액의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다고 대답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안에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신용정보법 시행으로 정보주체가 데이터 이동권을 지니게 되면서 정보처리자인 의료기관이 정보주체인 환자가 요구하는 곳에 정보를 보내야 하는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등 소비자의 권익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들 사이에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1대 국회 들어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와 관련해 발의된 네 번째 법안이다.
앞서 전재수 고용진 민주당 의원과 윤창헌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해 비슷한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2일 열린 공청회와 5월10일 열리는 공청회에서 나온 내용들을 토대로 보험업법 개정안을 심의하기로 했다.
정부도 국민들의 편의증진을 위해 의료기관의 실손의료보험 정보제공 의무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다만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를 반대하는 의료계의 반발은 여전히 정 회장이 넘어야 할 산이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손의료보험의 비효율적 청구절차를 개선하라고 권고했으나 의료계 등의 반대로 12년째 지지부진하다.
의료계에서는 보험사가 환자의 질병정보를 보험금 지급거절 등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고 의료기관이 보험사에 환자의 질병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해 보험사와 시민단체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다”며 “의사협회의 힘이 막강해 수년째 발이 묶여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