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버라이즌으로부터 8조 원의 장비 공급계약을 따내며 높아진 기대감이 실망으로 돌아오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삼성전자의 미국 통신사 수주상황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다”며 “삼성전자를 통한 납품업체들의 미국 수출도 예상치를 크게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버라이즌 계약을 따내기는 했으나 기존 통신장비시장 강자들의 아성을 넘기는 아직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에릭슨·노키아는 장비 품질은 물론 삼성전자보다 경쟁력있는 가격을 제시하며 수주를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화웨이가 미국 제재로 타격을 입어 반사이익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에릭슨과 노키아가 버라이즌 계약을 계기로 삼성전자를 경쟁자로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견제에 나서고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에릭슨이 올해 들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에 두 차례나 삼성전자의 특허침해 소송을 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삼성전자도 국제무역위에 맞소송을 내며 경쟁구도가 심화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시장조사업체 델오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글로벌 5G장비시장 점유율은 2020년 3분기 기준 6.4%다. 삼성전자가 목표로 하는 20%와 격차가 크다. 네트워크사업을 이끌고 있는 전경훈 사장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전 사장은 2018년 말 네트워크사업부장에 올라 3년째 장비사업을 이끌고 있다. 2019년 한때 글로벌 5G장비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는 등 성과를 내며 2020년 초 사장으로 승진했다. 공대 교수 출신으로서 이례적으로 사장까지 오를 정도로 실적과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현재까지 성과는 목표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 사장은 사업부장으로서 3년차에 접어든 데다 한국나이로 60세에 접어든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어 더욱 공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해 갈 것으로 보인다.
전 사장은 미국시장의 아쉬움을 딛고 올해 유럽과 일본 등에서 5G장비 수주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럽과 일본시장에서 전 사장이 얼마나 성과를 올릴지는 미지수다.
에릭슨·노키아가 본진이나 다름없는 유럽시장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일부 유럽국가는 여전히 5G 상용화에 화웨이 장비를 활용할 뜻도 내비친다. 여기에 일본 기업들도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은 일본산 5G장비 육성을 위해 일본업체의 5G장비를 구매하면 통신사에 세금 감면혜택을 주고 있어 삼성전자가 파고들기 더욱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 사장은 여전히 적극적으로 수주기회를 찾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는 2월 콘퍼런스콜에서 “세계 통신사들과 5G장비 수주작업을 진행 중이다”며 “중남미와 유럽시장에서 신규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사장이 그나마 기대를 걸어볼 만한 곳은 인도다. 삼성전자는 인도 1위 통신사 릴라이언스지오에 LTE 장비를 공급하는 등 거래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릴라이언스지오의 5G시범사업에도 협력하고 있다.
다만 인도의 5G투자가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지연되고 있는 점이 변수다. 삼성전자는 4분기에 인도에서 주파수 경매가 진행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 장비 발주는 그 이후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전 사장에게 5G 장비사업을 확대하는 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측면지원을 받지 못하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이 부회장은 2019년 5월 일본 통신사 KDDI 경영진과 만났는데 같은 해 10월 삼성전자가 KDDI로부터 20억 달러 규모의 5G 장비 계약을 따내는 데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여겨진다.
2020년 버라이즌 수주에도 이 부회장과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최고경영자(CEO) 사이 친분이 작용했다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 부회장은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그룹 회장과도 자녀 결혼식에 참석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릴라이언스그룹의 통신분야 자회사로 릴라이언스지오를 거느리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20년 10월 베트남 출장에서 돌아오며 “고객을 만나러 일본도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출장으로 재차 5G 장비 수주에 힘을 실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