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가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별세했다. 향년 89세.
백기완 소장은 15일 오전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백기완 소장은 2020년 1월부터 건강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백기완 소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 딸 백원담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백미담씨·백현담씨, 아들 백일씨가 있다.
백 소장은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부터 농민운동과 빈민운동, 통일운동, 민주화운동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다.
그는 1964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74년 ‘유신 반대를 위한 100만 명 서명 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감옥에 갔다.
1979년 10월 결혼식을 가장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힌 ‘기독교청년연합회(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체포돼 다시 수감됐다.
1986년에는 권인숙씨(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성고문 폭로사건을 계기로 열린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규탄대회’에 참가했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백 소장은 민중후보로 대통령선거에도 두 차례 출마하는 등 진보정당의 토대를 일구는 데 기여했다.
1987년 대선 때 민중후보로 출마했지만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와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에게 단일화를 요청하면서 사퇴했다.
1992년 대선에서는 재야 운동권의 독자후보로서 선거를 완주했지만 득표율은 1%에 그쳤다. 그 뒤에는 1984년 스스로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의 소장으로서 일해왔다.
백기완 소장은 백범 김구 선생과더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구 선생은 1898년 ‘치하포사건’으로 인천 감리서에 갇혔다가 탈옥한 뒤 황해도 은율군을 지나다가 백기완 소장의 할아버지 백태주씨에게 도움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1945년 광복 이후 아버지 백홍렬씨가 백기완 소장을 데리고 서울로 가서 김구 선생과 만나게 했다. 그 뒤 백기완 소장은 김구 선생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백기완 소장은 문학인이기도 하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으로 알려진 시 ‘묏비나리’를 지었다. ‘장산곶매 이야기’ 등의 소설과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