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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 |
재계에서 각자대표제를 도입하는 사연도 제각각이다.
최근 들어 대기업들이 활발하게 사업구조를 개편하면서 각자대표제를 채택하는 경우가 늘었다.
◆ LG전자와 삼성전자, 공룡 혼자서는 감당 못 해
LG전자는 연말 인사에서 삼성전자처럼 사업부별 각자대표제로 전환했다.
LG전자는 그동안 오너 집안인 구본준 부회장과 최고재무책임자인 정도현 사장이 각자대표를 맡았다. 역할분담형이었다. 구 부회장은 사업을 총괄하고 정 사장은 살림을 책임졌다.
이번에 구 부회장이 지주회사 LG로 이동하면서 변화가 나타났다. 조성진 H&A본부장과 조준호 MC본부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두 사람은 LG전자의 주력사업인 가전사업과 휴대폰사업을 각각 이끌고 있다.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성장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사업부별 각자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2013년부터 권오현 DS부문장과 윤부근 CE부문장, 신종균 IM부문장이 대표이사를 맡아 각자 사업부문을 이끌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책임경영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있지만 회사 내부 정보교환을 차단하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사업과 휴대폰사업을 하고 있는데 부품과 완제품을 한 회사에서 하고 있어 고객사들이 불안해 했다. 가령 반도체사업의 고객사 정보가 완제품사업 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염려한 것이다.
이 때문에 사업부별로 최종결재선까지 완전히 분리해 내부 정보교환을 차단하고 독립경영 의지를 보여줬다. 이를 통해 애플 등 경쟁사이자 고객사의 불만을 잠재우겠다는 뜻도 깔려있다.
◆ 삼성물산, 합치고 합치다 보니 각자대표
사업부별 각자대표제는 합병으로 탄생한 회사에서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경우가 삼성물산이다.
삼성물산은 올해 제일모직과 합병해 4인 대표이사 체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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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왼쪽)과 김봉영 제일모직 리조트부문 사장. |
이전까지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상사부문을 맡고 있던 최치훈 사장과 김신 사장, 제일모직 패션부문과 리조트·건설부문을 맡고 있던 윤주화 사장과 김봉영 사장이 합병 이후에도 모두 그대로 대표이사를 유지했다.
연말인사에서 윤 사장이 삼성사회공헌위원회로 이동하면서 대표이사가 3명으로 줄었지만 이서현 패션부문장 사장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 사장은 내년 주총에서 대표이사에 선임될 가능성도 있다.
합병 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도 전혀 다른 사업을 하던 회사들이 합병해 탄생했다. 사업부별 각자대표제를 이어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삼성물산은 1995년 삼성건설과 삼성물산이 합병하면서 건설부문과 상사부문이 한 몸을 이뤘다. 제일모직은 2013년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인수하면서 출범했다.
삼성에버랜드는 부동산·테마파크사업에서 건설, 식음료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다가 합병 전 식음료부분이 자회사 삼성웰스토리로 독립했다. 제일모직은 패션·소재사업을 하다가 패션사업은 삼성에버랜드로, 소재사업은 삼성SDI로 넘어갔다.
◆ 빅딜 이후 신구 조화 꾀하는 한화그룹
올해 한 해 재계 최대 이슈였던 빅딜도 각자대표제를 낳은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화그룹은 삼성그룹으로부터 인수한 화학·방산계열사들에서 각자대표제를 도입했다. 기존에 회사를 꾸려온 삼성맨과 한화그룹의 DNA를 이식할 한화맨을 나란히 대표에 선임한 것이다.
한화테크윈은 12월 초 민수부분과 방산부분을 독립적으로 경영하기로 하고 김철교 사장과 신현우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기존 삼성테크윈의 역량과 한화그룹의 색채를 잘 조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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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교 한화테크윈 사장(왼쪽)과 신현우 한화테크윈 부사장. |
김철교 사장은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소장 출신으로 2011년부터 삼성테크윈의 대표이사를 맡아 왔다. 한화그룹은 삼성테크윈이 한화테크윈으로 바뀐 뒤에도 김 사장을 유임했다.
그 대신 빅딜과정에서 방산부문 PMI(합병 후 통합) TF팀장을 맡았던 신현우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해 뒤를 받치도록 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방산부문 역량을 더욱 키우기 위해 신 부사장을 방산부문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한화테크윈보다 먼저 각자대표제를 시도한 한화종합화학은 삼성맨과 한화맨의 동거를 끝냈다.
한화그룹이 한화종합화학을 인수한 뒤 기존 정유성 삼성종합화학 대표는 퇴임을 결정했다. 한화그룹은 홍진수 삼성종합화학 경영지원실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동시에 화학부문 PMI TF팀장을 맡은 김희철 부사장이 한화종합화학과 자회사 한화토탈 대표이사를 겸직하도록 했다. 홍 사장과 김 부사장의 각자대표체제가 들어섰다.
하지만 홍 사장의 대표 임기는 길지 않았다. 홍 사장은 한화종합화학 노조 파업과 직장폐쇄 사태에 책임을 지고 11월13일 물러났다. 한화그룹은 홍 사장의 뒤를 이어 임종훈 한화케미칼 부사장을 한화종합화학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 두산그룹, 내조도 사업만큼 중요해
두산인프라코어는 11월 이오규 전 사장의 후임으로 최형희 부사장을 대표이사에 선임했다. 최 부사장은 손동연 두산인프라코어 사장과 함께 각자대표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최 부사장은 두산그룹의 대표적 재무통으로 두산중공업 최고재무책임자(CFO), 두산 CFO를 거쳐 두산인프라코어 CFO를 맡게 됐다. 최 부사장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 두산인프라코어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중책을 떠안았다.
최 부사장의 전임이었던 이 전 사장 역시 CFO였다. 이들은 각자대표로서 책임을 맡고 있으나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손 사장과 역할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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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동연 두산인프라코어 사장(왼쪽)과 최형희 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 |
두산그룹 계열사들은 CEO와 CFO가 각자대표를 맡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부터 굵직한 인수합병으로 그룹의 사업구조를 전면개편하면서 차입금 등 재무관리의 중요성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266% 정도로 15개 대기업집단 중 이랜드그룹과 한진그룹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두산엔진은 CEO인 김동철 사장과 CFO 김일도 전무가 각자대표제로 이끌어가고 있다. 김 전무는 올해 초 조남석 부사장의 후임으로 대표이사에 올랐다. 조 부사장은 두산엔진 CFO로서 재무구조 악화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두산건설도 이병화 사장과 송정호 부사장이 각자대표를 맡고 있다. 이 사장은 CEO로 사업을 담당하고 송 부사장은 CFO로 재무관리를 담당한다.
◆ 한라그룹, 지주사 전환 과제 마치고 사업역량 키워
한라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만도도 올해 각자대표제로 전환했다.
만도는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정경호 만도 부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에 따라 기존 성일모 사장 단독대표체제에서 성일모 사장과 정경호 부사장의 각자대표체제로 전환됐다.
만도의 각자대표체제 전환은 한라그룹 지주사체제 전환이 마무리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만도는 지난해 9월 지주회사 한라홀딩스와 신설법인 만도로 분할했다. 그동안 만도는 그룹 내에서 지주회사 역할을 감당해 왔으나 이를 벗고 자동차 부품제조사 본연의 사업적 역할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성 사장은 그동안 단독대표를 맡아 한라그룹 전체에서 재무책임자의 역할도 담당했다. 성 사장은 만도 재상장, 한라건설 유상증자, 지주회사 분할 등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정 부사장은 만도에서 스티어링디비전 본부장, 스티어링디비전 기술센터장, 브레이크디비전 본부장을 역임한 생산전문가다. 정 부사장이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만도의 기술·생산역량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