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릭스가 현대증권 인수를 포기하면서 현대그룹이 구조조정 막판 관문에서 제동이 걸렸다.
현대그룹은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과 현대증권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협의에 들어갔다.
현대증권이 인수합병시장에 다시 나올 경우 KDB대우증권 매각작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
◆ 현대증권 매각을 다시 추진할까
현대그룹은 19일 기준으로 3조3천억 원 규모의 자구계획안 가운데 2조9280억 원을 마련했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을 오릭스에 팔아 자구계획안 목표를 초과달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오릭스가 현대증권 인수를 포기하면서 자구계획안 이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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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현대그룹 관계자는 “자구계획안은 현대그룹이 산업은행과 협의해 만들었다”며 “오릭스가 물러난 이상 산업은행과 협의해 현대증권 매각 등 추후 조치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산업은행과 현대그룹이 현대증권 매각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현대증권이 실적 개선에 성공한 만큼 오릭스와 계약을 체결했을 때보다 더 높은 매각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증권은 올해 상반기 순이익 1707억 원을 올렸다. 2014년 같은 기간보다 2464%나 증가한 것이다.
현대그룹이 현대증권 경영권을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2008년 현대증권 매각설이 돌았을 때 지분을 추가매입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며 “현대증권의 실적이 개선됐기 때문에 현대그룹이 오히려 현금창출원으로서 현대증권을 계속 보유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오릭스에 현대증권 지분 22.56%를 넘기는 계약을 체결했을 때부터 경영권을 되찾을 여지를 남겨 두었다.
현대증권의 대주주인 현대상선은 오릭스의 인수자금 가운데 29.9%(1990억 원)을 펀드투자자로 재출자했다. 현대증권 인수계약에 오릭스가 현대증권 지분을 되팔 경우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에 우선매수권을 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매각 본입찰을 앞두고 교보증권이 보유했던 현대증권 지분 4.74%를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에 매각하도록 다리를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티시스은행은 2006년부터 현대그룹의 우호세력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현대상선은 2천억 원을 당장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현대상선은 2013년 4월 현대증권 매각대금을 담보로 산업은행으로부터 2천억 원을 빌렸다. 현대상선은 24일까지 이 돈을 상환해야 한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의 경영진 문제도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릭스가 인수를 포기하면서 퇴임하기로 했던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과 김기범 신임 사장 내정자의 거취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윤 사장은 오릭스의 계약 포기 소식이 전해진 뒤 현대증권 임직원들에게 “루머에 흔들리지 않고 업무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산업은행 “대우증권 인수전에 현대증권 영향 안 준다”
산업은행은 현대증권 매각이 불발되자 현대그룹과 앞으로 구조조정 방안을 새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현대그룹의 주채권은행이며 현대증권 매각주간사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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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 |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대그룹과 현대증권의 거취에 대해 앞으로 협의하겠다”며 “현대증권 매각은 현대그룹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자구계획안에 포함된 내용인 만큼 향후 계획도 현대그룹이 기본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산업은행과 현대그룹은 재무적투자자를 구하거나 현대증권 매각을 다시 추진하는 등 여러 방안을 놓고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이 진행하고 있는 대우증권 인수전에 현대증권의 매각 불발이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대형 증권사 2곳이 인수합병 시장에 함께 매물로 나올 경우 양쪽 모두 매각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현대증권과 관계없이 대우증권 매각절차를 일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대우증권 인수전에 현재 KB금융지주와 미래에셋증권이 뛰어든 상태”라며 “대우증권이 현대증권보다 몸집이 큰 데다 인수후보군도 겹치지 않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