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그룹은 이미 기존 제조사 중심 그룹에서 금융 중심 그룹으로 탈바꿈했다. DB손해보험과 DB생명, DB금융투자 등 금융 계열사들이 그룹 전체 매출에서 90%가량을 차지하며 굳건하게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DB그룹의 기업문화는 다소 보수적인 편이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데다 김준기 전 회장이 요즘 보기 드문 자수성가형 오너경영인인 만큼 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룹에서 김 전 회장에 대한 평가는 일밖에 모르는 ‘워커홀릭’이다. 끈기와 승부근성도 강해 결론이 날 때까지 임직원과 마라톤회의를 여는 일이 잦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정은 신중하게 하지만 한 번 결정하면 밀어붙이는 불도저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다. 고집도 매우 세 한 번 마음을 먹으면 생각을 잘 바꾸지 않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그러나 김남호 회장이 경영을 맡은 시대는 김준기 전 회장 시절과는 다른 만큼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안팎의 목소리도 높다.
김 회장의 취임사에서도 이런 고민이 읽힌다. 김 회장은 1일 내놓은 취임사를 통해 “경청하고 소통하는 경영자가 되겠다”며 “회사와 임직원이 함께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성격도 매우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기 전 회장이 추진력, 뚝심, 도전정신으로 대표된다면 김남호 회장은 겸손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전해진다. 김남호 회장은 임직원들에게도 존대말을 쓰며 종종 기자들과 만나 얘기를 듣기 위해 직원들의 흡연실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의 취임은 예견된 수순이다. 김 회장은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돼 경영수업을 받았고 지분 승계도 마쳤다. 현재 DB손해보험(9.01%)과 DBInc.(16.83%)의 최대주주다. DB손해보험은 DB생명, DB금융투자, DB캐피탈 등을, DBInc.는 DB하이텍과 DB메탈 등을 지배하고 있다.
다만 이번 취임은 예상보다는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회장의 이전 직급이 부사장인 점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읽힌다. 예상보다 서두른 취임에는 이근영 회장의 퇴임이 직접적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근영 전 회장은 2017년 9월 회장에 취임했다. 김 회장이 1975년에 태어나 젊은 나이인 만큼 충분한 경험을 쌓을 때까지는 이 전 회장이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이 많은 나이에 따른 체력적 부담을 호소하며 여러 차례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혀온 것으로 전해진다. 코로나19와 경영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그룹 내부의 동력을 모을 만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