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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현대차의 새 고급브랜드를 만들어낼까?
현대기아차는 글로벌 5위의 자동차회사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위치는 여전히 애매하다. 양적 성장은 거뒀지만 질적으로 그에 걸맞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주요 자동차시장에서 ‘저렴하고 적당한 성능의 차를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강하다.
현대차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는 현대차와 기아차뿐이다.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이 많게는 10개가 넘는 브랜드를 통해 다양한 계층의 소비자를 공략하는 점과 구별된다.
정몽구 회장은 오래 전부터 고급브랜드 출시를 고심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차가 고급브랜드 출시를 통해 대중차시장과 고급차시장을 나눠 공략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정 회장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형이다.
◆ 현대차 고급브랜드 출시설
15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 말 신형 에쿠스를 출시한다.
에쿠스가 현대차의 상징인 플래그십 세단인 만큼 출시를 앞두고 여러 말이 나돈다.
특히 현대차가 3세대 에쿠스를 대형 제네시스로 대체할 수 있다는 관측이 주목받고 있다.
현대차가 제네시스 기반의 대형 세단을 출시해 제네시스라는 고급브랜드를 따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가 제네시스에 현대차의 ‘H' 엠블럼이 아닌 날개 모양의 전용 엠블럼을 사용하고 있고 스포츠카에 제네시스 이름을 붙여 제네시스 쿠페를 판매하고 있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었다.
제네시스가 현대차의 새로운 고급브랜드로 점쳐지는 이유는 현대차가 제네시스를 통해 북미에서 브랜드 가치와 이미지를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1세대 제네시스와 2세대 제네시스는 국내와 북미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제네시스는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의 품질을 보여주기 위해 힘을 쏟은 대표적 모델이다.
정 회장은 2013년 말 2세대 제네시스를 출시하며 “유럽에서 유럽 명차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차”라고 강조했다.
◆ 끊이지 않는 고급 브랜드 출시설
현대차가 새 고급브랜드를 만들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현대차가 2005년 개발명 'BH'로 제네시스를 개발하고 있을 때부터 고급브랜드 출시설이 불거졌다.
당시 현대차 고위 임원들이 공개석상에서 “BH에 현대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새로운 고급브랜드를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2007년 제네시스 출시를 앞두고 고급브랜드 출시 계획을 뒤로 미뤘다.
차량 출시가 임박한 시점에서 새 브랜드를 내놓으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데다 제네시스 한 차종으로만 새 브랜드를 만드려면 별도 유통망 구축 등을 고려할 때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제네시스가 아직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쳤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고급브랜드 출시설이 나왔지만 대부분 설에 그쳤다.
현대차는 2011년 고급브랜드를 도입하기 위해 사전 시장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 회장은 당시 검토 끝에 새로운 브랜드를 내놓는 것보다 기존 현대차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 고급브랜드를 출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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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회장과 정홍원 국무총리가 2013년 11월 서울 용산구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신형 제네시스’ 출시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
◆ 고급브랜드 출시설 계속 나오는 이유
현대차의 고급브랜드 출시설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현대차의 브랜드 전략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세계 5위의 자동차회사이지만 현재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는 현대차와 기아차뿐이다.
현대차와 기아차 모두 배기량 2.0리터 이하의 준중형 세단부터 5.0리터의 대형 세단까지 다양한 세단을 출시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와 상용차도 생산하며 대중 브랜드로서 이미지도 비슷하다.
차별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가격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현대기아차가 글로벌시장을 공략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기아차를 둘러싼 영업환경도 예전과 다르다.
현대기아차는 현재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에서 현지 자동차회사의 저가공세에 대응하고 북미와 유럽 등 선진시장에서 고급브랜드와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현대기아차의 성장을 그동안 이끌었던 신흥시장은 최근 경기침체로 성장세가 주춤한 반면 유럽과 미국 등 선진시장은 되살아나고 있다.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성장을 거듭했던 현대기아차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5위 안의 자동차회사들은 모두 다양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GM은 캐딜락을 내세워 대중차와 고급차를 세분화해 판매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의 경우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만 10여 개가 넘는다. 가장 대표적 고급브랜드가 아우디이지만 그밖에도 포르쉐, 람보르기니, 벤틀리, 부가티 등 초고가 브랜드도 여럿 보유하고 있다.
일본의 자동차회사들은 미국에 진출한 뒤 고급브랜드를 따로 선보여 미국시장에서 중저가 이미지를 벗는 데 성공했다.
토요타는 렉서스를, 닛산은 인피니티를, 혼다는 아큐라를 보유하고 있다.
최중혁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2014년 말 출간한 ‘자동차 제국’을 통해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톱5에 오른 데는 기아차를 인수한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대차그룹은 이제 또 한 번 과감한 인수합병을 해야 한다”며 “해외 고급 브랜드를 인수해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고급브랜드 출시의 부담
정 회장이 고급 브랜드를 출시해야 한다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망설였던 이유는 그만큼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판매망 구축과 홍보 등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실패할 경우 떠안아야 할 부담도 매우 크다.
렉서스가 미국을 제외한 유럽 등에서 고전하고 인피니티와 아큐라가 미국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점도 현대차를 망설이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섣불리 고급브랜드를 출시하는 대신 현대차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현대차의 전체 이미지가 올라갈 경우 고급 브랜드 출시에 따른 위험부담도 그만큼 줄일 수 있다고 본 셈이다.
현대차는 이를 위해 고성능차 개발과 디자인에 힘쏟고 있다.
현대차는 디자인과 성능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외국인 임원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2014년 말 BMW에서 고성능 브랜드 ‘M’시리즈를 담당했던 알버트 비어만 부사장을 영입했다.
비어만 부사장은 최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을 소개했다.
현대차가 벤틀리의 수석디자이너 출신인 루크 동커볼케를 영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는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의 디자인 책임자로 있는 동안 디아블로, 무르시엘라고, 가야르도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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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회장이 2009년 3월11일 서울 하얏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신형 에쿠스 신차 발표회에 참석한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
◆ 미국에서 고급차 경쟁력 가능성 보여
현대기아차의 고급차 경쟁력도 차츰 인정받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렉서스 등 여러 고급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고급차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최고급 세단은 꾸준한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차의 에쿠스와 기아차의 K9은 7월 미국 대형 프리미엄 세단시장에서 둘이 합쳐 사상 처음으로 렉서스 판매량을 제쳤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BMW 7시리즈에 이어 3위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2014년까지만 해도 미국 대형 프리미엄 세단시장에서 둘이 합쳐 6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올해 7월 단숨에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현대기아차의 고급세단들은 이 시장에서 올해 들어 7월까지 총 1만8천여 대 판매되며 10.6%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포인트나 증가한 수치다.
현대차 제네시스도 미국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신형 제네시스는 올해 들어 7월까지 미국에서 1만5500여 대 팔렸다. 메르세데스-벤츠의 E클래스(2만7천여 대)와 BMW 5시리즈(2만5700여 대)에 이은 3위다.
현대차는 국내와 달리 미국에서 제네시스에 현대차 앰블럼을 달았다. 현대차와 다른 차라는 느낌을 주기보다 현대차의 이미지를 고급스럽게 만들기 위해서다.
◆ 대중브랜드와 고급브랜드로 나뉘는 시장
자동차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브랜드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자동차를 통해 과시욕구를 충족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흔히 자동차를 구분할 때 고급브랜드와 대중브랜드로 나눈다.
이런 브랜드 구분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일반적이다. 미국의 자동차상품성 만족도 조사기관인 JD파워는 자동차상품성 만족도 결과를 발표할 때 고급브랜드와 대중브랜드를 나눠 발표한다.
JD파워에 따르면 고급브랜드는 포르쉐, 재규어,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랜드로버, 링컨, 캐딜락, 인피니티, 렉서스, 볼보, 아큐라 등이다.
대중브랜드는 현대차, 기아차, 폴크스바겐, 포드, 쉐보레, 크라이슬러, 닛산, 토요타, 피아트 등이 해당된다.
이 조사에 따르면 고급브랜드일수록 상품 만족도도 높았다. 고급브랜드의 만족도는 1000 점 기준으로 841점이며, 대중브랜드의 평균은 790점이었다.
소비자들이 고급 브랜드일수록 높은 점수를 준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