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들 가운데 40%가 여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중국은 여권 보유비중이 고작 4%에 불과하다. 이 비율이 10%, 20%가 되면 관광산업이 크게 성장할 것이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미래에셋) 회장은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정을 앞둔 지난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중국 여행수요의 성장여력이 큰 만큼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가치가 높다고 본 것이다.
박 회장은 이전에도 '중국'을 키워드로 삼아 과감하게 베팅을 하고 결과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 미래에셋의 상황을 놓고 보면 역풍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이 미국 호텔 인수와 관련해 중국 안방보험과 법적 다툼에 들어가면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2조 원 이상의 자금이 자칫 묶이게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미래에셋은 이날 안방보험이 제기한 소송의 답변서와 반소장을 미국 델라웨어 형평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미래에셋은 2019년 9월11일 안방보험과 계약을 맺고 최근까지 인수절차를 밟아왔다. 미래에셋 계열사가 감당하기로 한 자금은 전체 인수금액 7조 원 가운데 2조6천억 원이다.
안방보험 측은 미국 법원에 인수 계약금 7천억 원을 포함해 2조6천억 원가량을 동결해줄 것을 요청해 놓았다.
양측이 법적 소송을 본격화하면서 미국 호텔 인수 관련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당초 중국 회사인 안방보험의 7조 원대 해외 호텔 포트폴리오를 그대로 인수하려 한 것은 중국 관광객을 끌어안으려는 박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나아가 아시아나항공 인수 당시 시장 예상치를 5천 억~1조 원가량 웃도는 가격을 써낸 것은 향후 중국 여행객 증가에 따른 호텔과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됐다.
결국 박 회장이 '중국'을 바라보고 과감한 베팅을 한 것인데 코로나19 여파로 중국 여행수요는 물론 글로벌 경기에 먹구름이 커지면서 박 회장의 전략에도 큰 차질이 빚어진 셈이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그룹 초기부터 중국시장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그는 2008년에 중국을 일컬어 "1845년 난징조약 이후 100여 년을 제외하고 절대 강대국이었던 그들의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며 "13억 인구가 낳을 엄청난 시장의 확대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임직원 서신에 적기도 했다.
2018년 11월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국내 최초로 중국 현지 사모펀드 운용사(PFM WFOE) 자격을 획득했는데 이 과정에서 박 회장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현지에 머물며 인가등록 작업을 진두지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중국사랑'은 시련을 안기기도 했다.
박 회장은 2007년부터 '인사이트펀드'를 운용하며 한때 중국사업에 자금의 80% 이상을 투자했다. 박 회장은 당시 중국사업의 전도사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중국 증시의 거품이 커지고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암초를 만나면서 펀드 원금이 반으로 줄었다.
이 때문에 가입자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결국 2012년 미래에셋은 일간지 광고를 통해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후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인사이트펀드'의 수익률을 5년 만에 흑자로 전환하고 이후 40%까지 누적수익률을 끌어올리면서 결국 반등에 성공해냈다.
박 회장이 코로나19라는 암초를 만나 결과적으로 또 다시 위기를 맞았는데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이를 극복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세계 관광산업이 위축돼 미래에셋이 보유하고 있는 해외호텔과 부동산 관련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어서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미래에셋대우가 1조 원 규모로 사들인 프랑스 파리 '마중가타워'는 유럽 코로나19 확산으로 완전한 재매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로 세계 관광산업은 현재 사상 최악이며 회복시점도 가늠하기 어렵다"며 "관광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미래에셋대우에는 코로나19가 거대한 불확실성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공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