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다수의 소비자 피해가 얽힌 복잡한 과제들이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금융소비자 보호조직과 기능을 확대하고 정비해 소비자 피해에 곧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2020년도 신년사에서 소비자 보호 강화를 올해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앞세우며 소비자 피해 방지에 금융감독원의 역할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10일 금감원에 따르면 이르면 1월 중 조직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윤 원장은 금감원 시무식에서 "올해 소비자 보호조직의 직원 수도 늘리고 기능도 확대하는 등 상당히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대규모 조직개편을 실시할 가능성을 예고했다.
최근 이어진 파생상품 손실사태와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중단사태, 경기 침체에 따른 자본시장 리스크 확대 등으로 금감원의 관리감독 기능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금감원은 파생상품 사태에 연루된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 경영진을 대상으로 제재수위를 논의하고 라임자산운용에는 검찰 수사 의뢰를 검토하는 등 적극적으로 후속조치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소비자에게 피해를 입힌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점검이 소홀했기 때문에 사태가 커진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핀테크 활성화정책으로 금융시장에 뛰어드는 신생기업이 급증하면서 금감원의 관리감독 대상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 점도 부담이 되고 있다.
윤 원장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금감원의 소비자 보호업무를 책임지는 금융소비자보호처의 인력을 대폭 늘리고 조직도 세분화하는 변화를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직개편 규모 및 시기와 인력확충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면서도 "윤 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대로 금융소비자 보호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금감원이 인력을 충원하거나 활동을 넓히기 위한 예산을 확보하려면 금융위원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윤 원장은 금감원의 인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고 관리감독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금감원 예산책정과 채용권한을 금융위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금융위는 이런 요구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한편 금감원 예산도 보수적으로 책정하고 있다.
금감원은 2019년도 예산이 2018년과 비교해 줄어들자 직원 수를 동결하고 조사업무를 담당하는 일부 조직을 폐지하는 등 비용 효율화에 중점을 둔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하지만 올해는 최근 벌어진 일련의 금융소비자 피해사태로 금감원의 역할을 강화해야 할 당위성이 확보된 만큼 금융위가 금감원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려 할 공산이 크다.
금융위는 최근 정례회의에서 금감원의 2020년도 예산을 전년보다 2.1% 늘어난 3630억 원으로 확정했는데 필요하다면 추경예산을 편성해 자금 공급을 확대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통과되면 윤 원장의 금감원 조직 확대개편 계획은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금감원이 법제화 뒤 금융회사의 법률 준수 여부를 감시하고 제재하는 역할을 맡게 되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회사의 상품 판매 규제를 강화하고 불완전판매 등 행위의 처벌 수위도 높이며 소비자의 권리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 통과는 무산됐지만 이 법안이 처음 발의된 지 약 9년 만에 국회 정무위원회 승인을 받아 본회의에 오른 만큼 법제화 관문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윤 원장도 신년사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이 곧 통과될 것이라는 기대를 보인 만큼 금감원 조직개편에서 소비자 보호기능을 강화하는 데 더욱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이 이를 통해 금융시장 질서 확립과 소비자 피해 방지에 기여한다면 최근 이어진 일련의 소비자 피해사태 여파를 딛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윤 원장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집행을 위한 대비책에 소홀함이 없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