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시작되면 중립지대는 존재하기 어렵다. 어느 쪽이든 선택을 하지 않으면 양쪽에서 총 맞기 십상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의 형제 다툼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서 롯데그룹 임원들도 속내가 복잡하다.
롯데그룹 후계자 분쟁의 결말이 어느 쪽으로 나든 인사태풍 등 후유증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30일 신격호 총괄회장의 자필서명이 담긴 2장의 지시서를 전격 공개했다.
신 전 부회장이 공개한 지시서에 신 총괄회장이 신동빈 회장을 해임하고 신 전 부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사장에 임명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다른 한 장은 신 총괄회장이 신동빈 회장을 포함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직위해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돼있다.
|
|
|
▲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 부회장. |
신 전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이 한국 롯데그룹 임원 몇 명을 해임하라는 지시도 내렸다고 주장했다. 한국 임원 해임지시서는 함께 공개되지 않았다.
신 총괄회장이 해임을 지시한 한국 임원은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사장 등 3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신 총괄회장의 건강문제를 들어 해임지시서의 내용이 법적 효력을 갖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이 판단능력이 흐려진 신 총괄회장을 부추겨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롯데그룹의 총수 일가 경영권 분쟁은 형제들의 전쟁으로 국한되지 않을 공산이 커졌다. ‘신동빈 대 신동주’의 세대결이 본격화하면서 이른바 ‘가신그룹’들도 선택을 요구받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결과에 따라 임원들도 운명을 달리할 수 있다.
롯데그룹 내부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신 총괄회장을 오랫동안 보좌해온 원로그룹과 신동빈 회장 측근의 신진그룹이 고위 경영진에 대거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번 한국 임원 해임 지시서에 신 총괄회장의 최측근 인사로 꼽히는 이인원 그룹정책본부장 부회장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롯데그룹 내부는 슬렁거리고 있다.
이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복심'이라고 불릴 정도로 신 총괄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로 알려졌는데 신동빈 회장 편으로 분류돼 한국 임원 해임 지시서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형제 다툼이 임원들에게로 불똥이 튄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이 부회장은 외국어대 일본어과를 나와 1973년 롯데호텔에 입사한 뒤 롯데쇼핑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7년 그룹정책본부 부본부장을 지낸 뒤 2011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전문경영인 최초의 부회장 승진이었다.
이 부회장은 원조 실세지만 신동빈 회장의 신임도 두텁다. 신동빈 회장이 2011년 회장으로 승진한 뒤에도 그룹경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그룹 내 모든 보직에서 잇달아 해임될 당시에도 후계문제와 관련해 일절 언급을 삼갔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이 최근 이 부회장의 집무실 출입을 막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이 부회장이 신동빈 회장 쪽으로 기운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황각규 사장은 신동빈 회장의 ‘오른팔’ 혹은 ‘왕실장’으로 불리는 최측근 인사다. 황 사장은 정책본부 운영실장과 제2롯데월드 안전관리위원회를 맡고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됐던 해임지시서에 거명된 한국 임원이 황 사장이라는 말도 돌고 있다. 그러나 황 사장은 “누군가가 작정을 하고 나를 거론하려는 의도 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
|
▲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 |
황 사장은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한 뒤 1979년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했다. 신동빈 회장이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를 맡으면서 당시 부장이었던 황 사장과 인연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사장은 한국 롯데그룹에서 신동빈 회장 체제가 굳혀지면서 승승장구했다. 2011년 롯데쇼핑 사장을 거쳐 지난해 정책본부 운영실장으로 승진했다. 황 사장은 신동빈 회장이 주도한 롯데그룹의 인수합병을 총지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황 사장은 최근까지도 신 회장의 국내외 현장경영에 어김없이 수행했다. 황 사장은 신 회장이 지난 16일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오르자 신 회장이 2009년 선포한 ‘비전 2018’을 재조정하는 작업도 주도하고 있다.
임병연 롯데그룹 미래전략센터장 전무, 김영준 롯데상사 대표, 허수영 호남석유화학 대표 등은 황 사장과 같은 서울대 화공과 출신이다.
롯데그룹 실세 임원들 가운데 소진세 그룹 대외협력단장과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도 빼놓을 수 없다.
소진세 단장은 신동빈 회장의 입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변인 역할을 해 온 인물이다. 소진세 단장과 노병용 대표는 이번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말을 아끼며 실무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인 임원 가운데 고바야시 마사모토 롯데캐피탈 대표이사도 관심을 끈다. 마사모토 대표는 11년째 롯데캐피탈 경영을 맡고 있는 장수 CEO로 신동빈 회장의 또 다른 측근으로 분류된다.
그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고 재무책임자(CFO)도 겸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깊숙이 관여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