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이 수염을 기른 기장에게 비행정지 처분을 내린 것이 정당하다며 행정소송을 낸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조직문화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30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이 행정소송을 통해 비행정지 조치의 정당성을 확인받겠다고 나서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조직문화가 지나치게 경직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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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천 아시아나항공 사장. |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6월 중앙노동위원회가 “비행정지 처분을 취소하고 해당 기장이 정상근무했다면 받았을 비행수당을 지급하라”고 내린 판정에 불복해 최근 서울행정법원에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취소소송을 냈다.
아시아나항공 A기장은 2014년 9월 김포공항 화장실에서 안전운항 담당 임원과 마주쳤다. 임원은 A기장의 턱수염(3cm가량)을 지적했고 잠시 뒤 A기장은 팀장으로부터 수염을 깎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A기장은 수염을 기른 외국인 기장들을 본 적이 있어 수염이 큰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A기장은 아시아나항공의 ‘임직원 근무 복장 및 용모 규정’을 확인했다.
이 규정 5조에 “안면은 항시 면도가 된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며 수염을 길러서는 아니된다. 다만 관습상 콧수염이 일반화한 외국인의 경우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를 허용한다”고 명시돼 있다.
A기장은 이 규정이 내국인에 대한 차별적 규정이라고 판단하고 수염을 밀지 않았다.
팀장은 지시사항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A기장의 저녁비행을 취소했고 그 뒤 29일 동안 조종을 맡기지 않았다. A기장은 이 기간 비행수당 324만 원도 받지 못했다.
A기장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수염을 길렀다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비행정지라는 인사처분을 통보하고 임금상 불이익을 준 것은 인사권 남용”이라며 “비행정지 기간 받았어야 할 임금을 지급해 달라”는 구제신청을 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A기장이 낸 구제신청을 기각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6월 재심신청을 받아들여 “비행정지 처분을 취소하고 정상적으로 근로했다면 받았을 금액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이 이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취소소송을 냈다.
아시아나항공의 이런 조치에 대해 아시아나항공의 기업문화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세계를 대상으로 사업을 벌이는 항공사가 기장의 수염까지 단속하는 것이 말도 안된다는 것이다. 특히 기장이 승객을 직접 만나는 객실승무원도 아닌 만큼 용모에 대해 지나치게 까다롭게 규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아시아나항공이 외국인 기장에게 수염을 허용하는 것은 수염과 비행업무의 무관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외국인은 되고 한국인은 안 된다는 점에 대해 인종차별의 소지도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상명하복식 의사결정 체계도 문제로 지적된다.
A기장은 제대로 된 절차도 밟지 못한 채 팀장의 지시로 당일 저녁부터 비행정지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경직된 조직문화가 조종석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경우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2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한항공의 괌 사고도 기장과 부기장 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발생했다.
당시 기장이 고도를 잘못 파악했지만 기장과 부기장 간의 계급적 권위주의 문화 때문에 부기장이 이를 제시간에 바로잡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사고원인으로 지목됐다.
아시아나항공의 한 조종사는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 게시판에 “아시아나항공의 조직문화가 경직되고 어떠한 유연성도 발휘되지 않는다”며 “조종석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서 기장에게 부기장이 조언을 할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