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진 KCC 회장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여 있다.
KCC는 삼성물산 자사주 전량을 사들여 제일모직과 합병에서 ‘백기사’ 역할을 했는데 합병 이후 삼성물산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KCC는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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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진 KCC 회장. |
국민연금도 좌불안석이긴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식을 모두 들고 있는데 합병안 통과 뒤 두 회사의 주가가 급락해 평가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삼성물산 주가는 21일 전날보다 1.33%(800원)가 하락한 5만92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제일모직 주가도 2%(3500원) 내렸다. 제일모직 주가는 이날 17만1500원에 장을 마쳤다.
두 회사 모두 합병안이 임시주주총회를 통과한 17일 이후 사흘째 내리막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삼성물산 주가는 16일 만해도 6만9300원을 기록했다. 삼성물산 주가는 제일모직과 합병계획이 발표된 지난 5월27일 6만5700원까지 올랐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7%가량 지분 보유사실을 밝히며 합병반대 공세를 본격화하자 삼성물산 주가는 6월8일 8만40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물산 주가는 그 뒤 7만 원대를 내주고 6만 원대에서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다 정작 합병안이 주총을 통과하자 5만 원대 후반까지 털썩 주저앉은 것이다.
정몽진 KCC 회장은 단단히 체면을 구기고 있다. 정 회장은 KCC를 통해 지난 6월10일 종가 7만5천 원에 삼성물산 주식의 5.76%에 해당하는 자사주 899만 주 전량을 사들였다. 매입가격은 6743억 원이었다.
KCC가 사들인 삼성물산 주식은 21일 종가 기준으로 환산하면 5322억 원 가량이다. 평가손실액이 1400억 원을 넘긴 것이다.
올해 들어 삼성물산 주가가 7만 원을 넘긴 것은 단 3거래일에 불과하다. 현재 주가상황만 놓고 보면 정 회장은 삼성물산 주가의 상투를 잡은 셈이다.
정 회장은 삼성물산 자사주를 매입해 주총에서 합병의 ‘백기사’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합병안은 삼성물산 주총에서 최소 67%의 찬성표를 얻었어야 했는데 표대결 결과 69%를 얻었다. 2% 지분만 반대표를 던져도 부결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KCC가 보유한 지분이 6%에서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인 만큼 이번 합병안 통과에 사실상 절대적 영향을 끼친 것이다.
삼성물산 현재 주가만 놓고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정 회장 입장에서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정 회장은 삼성물산 자사주 매입을 결정한 뒤 안팎에서 협공을 받기도 했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KCC의 자사주 취득을 통한 의결권 획득이 불법이라며 법적 공세를 퍼부었다. 정 회장은 또 삼성물산 자사주를 고가로 매입했다며 배임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정 회장은 재계에서 ‘미다스의 손’ 혹은 ‘한국의 버핏’으로 불릴 정도로 투자의 귀재로 손꼽힌 오너 경영인이다. 이 때문에 KCC를 두고 건자재업이 아닌 자산운용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순전히 투자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정 회장이 KCC를 통해 삼성물산 자사주 매입을 결정한 것은 자존심 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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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
KCC는 이번에 취득한 삼성물산 자사주 외에 제일모직 지분도 10.19%를 보유해 2대 주주에 올라있다. 정 회장은 합병안 통과 뒤 제일모직 주가하락에 따른 평가손실도 입고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도 난처한 처지에 몰려 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61%, 제일모직 지분 5.04%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두 회사 주가하락에 따라 현재까지 3천억 원이 넘는 평가손실을 입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민연금은 합병을 둘러싼 찬반공방에서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어 그 결정에 관심이 집중됐다.
국민연금은 찬성의견을 내기로 결정하면서 구체적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합병무산에 따른 두 회사 주가하락을 우려한 점도 작용한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막상 합병안이 통과된 뒤 주가가 속절없이 하락한 만큼 국민연금도 당장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