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문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기업공개(IPO) 전문가’로서 체면을 구기게 됐다.
‘기업공개 강자’로 불려오던 한국투자증권이 올해 들어 유독 기업공개부문에서 부진한 실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기준 한국투자증권의 기업공개 공모총액은 380억 원으로 증권사 가운데 8위에 올라 있다. 1위인 NH투자증권(4379억 원), 2위인 대신증권(1818억 원)과 각각 12배가량, 4배가량 차이난다.
2018년 상반기 기업공개 공모총액 1219억 원과 비교해도 68.8% 대폭 줄었다. 상반기 코스피시장과 코스닥시장의 누적 기업공개 공모금액이 1조1430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7천억 원)보다 63% 늘어났다는 점과 대조적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들어 1월 여행사 ‘노랑풍선’을 코스닥에 상장하고 5월 체외진단기업 ‘수젠텍’을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 이전상장하는 데 그쳤다.
심지어 수젠텍은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일반청약 경쟁률인 1.5 대 1을 보이며 흥행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한국투자증권은 수젠텍의 실권주 4만5천주마저 떠안게 됐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올해 들어 기업공개 실적이 다소 부진한 것은 맞다”면서도 “기업공개 업무는 중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만큼 하반기까지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공개 전문가’로 이름을 알린 정 사장으로서는 한국투자증권의 기업공개 부진으로 체면을 구기게 됐다.
한국투자증권은 NH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와 함께 ‘기업공개 3대 강자’로 꼽힐 만큼 기업공개 부문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왔다.
2018년에도 공모총액 3645억 원을 달성하며 미래에셋대우, 대신증권에 이어 3위를 차지한 적 있다.
정 사장은 과거 삼성카드, 삼성생명 등 ‘초대어급’ 기업들의 상장을 주관하며 국내에서 기업공개 분야 최고 전문가로 손꼽혀왔다.
정 사장은 공모 규모 4조8천억 원에 이르는 삼성생명을 상장할 때 기업금융본부장으로서 모든 과정을 이끌었다.
기업공개는 보통 1년의 시간을 두고 이뤄지는데 삼성생명 상장은 5개월 만에 이뤄져 특히 난도가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카드를 상장할 때는 '기업공개 선진화방안'을 적용해 외국 기관투자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하기도 했다.
기업공개 선진화방안은 외국 기관투자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겨지던 청약금제도를 없애고 외국 기관투자가가 공모주에 관해 ‘수요예측’을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청약금제도는 기관투자가들이 청약대금의 100%에 이르는 증거금을 주관사에 2~3주 동안 납입해야 청약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정 사장이 지난해 11월 취임하면서 시장에서는 한국투자증권의 기업공개부문을 더욱 강화해 올해 1위를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올해 들어 기업공개부문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정 사장으로서는 아쉬움이 클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투자증권은 하반기 '역전'을 통해 명예회복을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이 상장주관을 맡고 있는 기업 가운데 화장품용기 생산업체인 ‘펌텍코리아’의 기관 수요예측이 18~19일에 이뤄졌다. 희망 공모가격 범위는 24만 원에서 27만 원까지다.
희망 공모가격 범위에서 공모가격이 결정되면 공모 규모는 1500억~1700억 원 수준이 돼 한국투자증권은 단숨에 기업공개 공모총액 2위에 올라서게 된다.
전자금융결제기업 ‘세틀뱅크’와 언어빅데이터 기업 ‘플리토’의 기관 수요예측도 각각 6월27일, 7월1일에 예정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현재 상장을 주관하는 기업 가운데 상장 예비심사를 받고 있는 기업만 10곳이 넘는다”며 “하반기에는 상반기보다 훨씬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