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점포 폐쇄 및 통·폐합을 추진할 때 사전 영향평가 등을 통해 점포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는 방안 등이 담긴 은행권 자율협약이 5월부터 적용된다.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생기면 은행들은 전통적 영업점포의 모습에서 벗어난 복합점포 및 특화점포 등 탄력적 점포 운영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 설치된 현금자동입출금기. <연합뉴스> |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4월에 은행 점포 폐쇄절차와 관련된 공동협약을 내놓고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금융감독원이 은행의 무분별한 점포 폐쇄를 막기 위해 도입하려 했던 모범규준보다는 강제성이 한 단계 낮은 수준의 공동협약이다.
은행들이 디지털시대에 점포 폐쇄 및 통·폐합은 불가피하다며 반발한 점을 염두에 두고 금감원과 은행연합회가 함께 논의해 공동협약 방식으로 추진됐다.
이번 공동협약에는 점포 폐쇄 여부를 은행 자율에 맡기되 점포 폐쇄에 따른 사전영향평가를 진행해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이나 무인점포 등 대체수단을 마련하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점포 숫자를 많이 유지하는 은행에는 금감원의 경영실태 평가에서 가점을 주는 유인책 등도 마련된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과 은행권은 머리를 맞대고 공동협약과 관련된 마지막 세부적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 모바일뱅킹이나 인터넷뱅킹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고객이나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금융 소외계층을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오프라인 점포나 대체수단이 필요하다는 금감원의 시각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놓고 은행의 경영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말도 나오지만 은행들이 합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뚜렷한 지침이 생기는 만큼 오히려 은행들의 탄력적 점포 운영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은행 19곳의 국내 점포 수는 2016년 7103곳에서 2017년 6791곳으로 1년 동안 312곳이 줄었지만 2018년에는 20곳 줄어드는 데 그쳤다.
금감원이 금융 소비자 보호를 내걸고 점포 축소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점포를 줄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공동협약이 시행되면 상권 분석을 통해 대체수단을 마련하면 되는 만큼 은행들로선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KB국민은행 파업 당시 고객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거의 없었던 점도 점포 폐쇄 및 통·폐합에서 큰 장애물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은행들로선 오프라인 점포를 줄이는 대신 편의점 ATM기나 우체국 ATM기 등을 활용하거나 키오스크 등 무인점포를 운영해 비용 절감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다. 키오스크란 터치스크린 방식의 무인 단말기가 설치된 장소를 말한다.
최근 증권사와 협력한 자산관리(WM) 중심의 복합점포뿐 아니라 카페나 편의점, 서점 등과 손잡은 특화점포를 내놓는 속도도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BNK부산은행 등은 각각 카페 안에 은행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거나 은행 점포 안에 빵집 등을 둔 다양한 형태의 영업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공간 효율성을 확보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과 동시에 고객층을 넓힐 기회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이나 관공서 등 주변 상권에 맞춰 영업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점포도 금융 수요에 맞춰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 은행 점포의 영업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4시이지만 주변에 은행 점포를 이용하는 주요 고객에 맞춰 영업시간을 낮 12시~오후 7시, 오전 7시30분~오후 3시 등으로 변화를 주는 방식이다.
한국보다 앞서 비용 절감을 위한 점포 축소가 진행되고 있는 일본에서는 지방은행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공동영업 점포를 운영하는 등 고정관념을 깨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공동협약의 구체적 내용이 나와야 언급을 할 수 있겠지만 은행의 자율성이 크게 훼손되지 않을 수준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공동협약 내용에 따라 효율적이고 탄력적으로 점포를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